book

혼자 남은 밤, 당신 곁의 책 - 표정훈 지음

이사벨라아나 2019. 6. 29. 09:19



혼자 남은 밤, 당신 곁의 책

탐서주의자 표정훈, 그림 속 책을 말하다

한겨레 출판


책 표지에 에드워드 호퍼의 기차안에서 홀로 책읽는 여인의 그림과 

'혼자 남은 밤, 당신 곁의 책'이라는 꽤 매력적인 책제목이 마치 나를 위한 책인 듯 

강한 호기심이 일어 읽어보고 싶었다. 작가는 책 속에서

표지에 실린 제목과 저자, 출판사 정보만 접하더라도 충분히 독서인이라고 하는데

요즘 노안을 핑계로 독서를 멀리하는 내게 약간의 위안을 주었다.


이 책은 2만권의 장서를 소유한 탐서주의자 표정훈 작가의

 주로 책과 관련된 명화들과 그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에 대한 레퍼런스와

작가의 상상력이 또다른 스토리로 재현되는 듯 흥미있는데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덧붙여진 스토리는

 그림을 읽는다는 것과 책속의 또다른 책을 보는 즐거움을 함께 선사한다.


에드워드 호퍼의 '293호 열차 C칸'의 그림속에 등장하는 여인 캐서린의 스토리에서

기차안에서 하는 독서가 원하지 않는 대화를 피하는 수단이라는 것과

미국의 작가 피츠제럴드의 책을 인용해

그림속에 숨겨진 책 이야기와

인문학 수필이 담긴 작가 자신의 경험에서 오는

책과의 사소한 에피소드도 담겨있다.





'서인합일'을 통해 '호모 비블리쿠스'라는 서인종 용어가 탄생되어

주세페 아르침볼트의 '사서'라는 그림에서 보듯

로마 시대에 이미 있었다는 것을 알았고

벨기에 출신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포로가 된 독자' 그림 속의 책이

초현실주의 텍스트일 것이라는 상상력과

로렌스 알마 타데마의 '호메로스 읽기' 그림에서 소개되는 책속의 독서와 관련한 책들은

책을 읽기 위해 모여든 네 명의 등장인물에 관한 역사적인 스토리까지 짜맞춰

그 시대적인 분위기까지 짐작하게 만들었다.


언젠가 김홍도 그림을 보러간 적이 있는데 그림마다 파초잎이 등장해 의아했는데

파초의 푸른색이 곧은 선비의 기개를 상징한다는 것에 의문이 풀렸다.

비교적 장수한 빅토르 위고의 가정사를 들여다보게 한 그림인

오귀스트 드 샤티용의 '독서하는 레오폴딘'은

다섯자녀 중 단 한명 만이 위고보다 오래살았다는 것을 통해

자식은 다만 살아있다는 그 자체만으로 충분한 효도라는 것이 새삼 슬프게 다가왔다.


독서광이었던 고흐의 이야기와

도라 캐링턴의 '리튼 스트래치' 그림속에 담긴 동성애 이야기

루이 15세가 아꼈다는 프랑스와 부세의 '마담 드 퐁파두르 초상' 그림에서

프랑스의 샴페인 잔 모양이 퐁파두르의 가슴 모양을 본 땄다는 야사는 의외였고

19세기 벨 에포크 시대에 그렸던 비토리오 마태오 코르코스의 '꿈' 그림 속에

묘사된 세 권의 책이 아마도 루소의 마카르총서 중 세권이 아닐까하는 추측이

꽤나 설득력있게 전달되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직접 본 적이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인

고희동의 '부채를 든 자화상'그림에서

두가지 '최초' 즉 서양식 단행본이 묘사된 우리나라 최초의 그림이라는 것과

책이 눕혀져 있지 않고 바로 세워져 있는 모습이 묘사된 최초의 그림이라는 설명에

단지 그림만 보았지 그 속에 담겨있는 디테일까지는 전혀 생각지 못했는데

거기다가 꽂혀있는 책 제목까지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작가의 필력이

 카프카의 '책은 도끼다'라는 문구와 더불어

이 책을 읽는내내 내 머리를 쿵하고 내리찧었다.



책 제목처럼 이 책은 잠 안오는 밤 짧게 읽기 딱 좋은 책이다.

그림 뿐만 아니라 책 속에 등장하는 또다른 책들도 기회되면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