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처음 읽었던 책 파스칼 키냐르의 은밀한 생을 다시 펼쳤다.
매일 글을 쓰지는 않지만 매일 책을 읽는다는 파스칼 키냐르
독서가 마법의 양탄자여서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 수 있게 해준다는 그의 말이
이 책을 읽으면서 실감했다.
이 책은 소설로 분류되는데 장르의 구분이 모호하다.
소설이기보다는 파스칼 키냐르의 자전적이야기이기가 담겨있는
철학에세이이기도 하고 그의 탁월한 언어적 감각이 들어있는
아름다운 문장으로 이루어진 시적 산문이기도 하고 음악과
사랑에 관한 독창적인 담론이기도 하다.
키냐르는 음악가인 아버지와 언어학자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5개의 언어를 구사하는 능력과 첼로를 연주하는
음악인이기도 해 자신의 책인'세상의 모든 아침'으로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조르디 사발을 비롯해 그와 관련된 음악가 이야기가 종종 등장하기도 한다.
'은밀한 생'이라는 제목은 사회의 사각지대에서 사회의 중재없이 설아가는 삶의 한 형태,
전류에 비유하자면 정상적인 흐름에서 단락된 상태로 살아가는 방식을 의미한다.
집단의 동의없이 사랑에 빠진 연인들이 살아가는 방식, 즉 결혼이 아닌, 번식의 목적성이 배제된
철저하게 반사회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은밀하게 살아가는 방식이다. - 480 (옮긴이의 글)
책은 1인칭으로 네미 샤를레(가짜이름)라는 걸어다니는 음악사전인
음악선생과의 불륜적 사랑으로 시작되는데
십년전에 사랑했던 그녀는 이미 죽었지만
지금 현재의 연인인 M이란 여인과 어떤 유사성이 있다.
고대 그리스 시의 번역가, 라틴어와 그리스어에 능통하고 철학자이기도 한 키냐르의
라틴어의 어원으로 이루어진 고어와 수많은 고전작품들에서 인용되는 문장들을
지극히 원초적인 성과 은밀한 생에 관한 논증들은 하나의 완성되지 못한 퍼즐을
조각조각 끼워 맞추듯이 접근한다.
삶, 사랑, 성, 나체, 쾌락, 매혹, 죽음, 회귀, 침묵, 탐색, 결별, 음악, 독서 등
그의 지식이 총체적으로 들어있는 형식이 파괴된 인간의 근원을 탐색하는
철학적 사유가 담겨있는 책이라 읽는데 다소 어려웠지만 흥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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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서
모든 강물은 끊임없이 바다로 휩쓸려 들어간다.
나의 삶은 침묵으로 흘러든다. 연기가 하늘로 빨려들 듯 모든 나이는 과거로 흡수된다. - 11
논증이란 새벽의 박명을 의미하는 고어이다. 그것은 잠깐 동안에 들이닥치는 희미한 빛 속에서
밝아지고 지각되는 모든 것이다. 논증이란 단호하기 그지없다.
하천이 범람하는 바로 그 순간에 강물의 흐름을 바꾸기란 절대로 불가능하다.
새벽에 동이 트는 것을 멈추게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 12
단테의 '지옥편'에서 파올로와 프란체스카는 함께 '랜슬롯'을 읽는다.
사랑은 이중의 포옹으로 정의된다: 언어의 포옹과 침묵의 포옹
그것은 침묵에 빠진 언어의 포옹이다. - 146
발터 벤야민이 파리에서 썼던 다음 문장은 놀라운 것으로, 문장 자체는 고대 로마적이다.
"하나의 이미지란, 눈 깜짝할 짧은 순간에, 그 안에서 옛날이 지금을 만나 새로운 별자리를 형성하는 어떤 것이다." - 279
죽는다는 것이 태어남의 완성이라면 태어나는 자는 이 세상으로 돌아오는 자, 즉 유령이다. - 347
마사초가 그린 최초의 인간은 아직도 오른쪽 발을 에덴의 경계를 이루는 칸막이 문턱에 걸치고 있다.
우리는 모든 경계들의 경계에 붙잡혀 있는 육체를 가지고 있다.
즉 삶과 죽음 사이.
즉 언어와 침묵 사이.
즉 결별 속에. - 4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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