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내 이름은 빨강 - 오르한 파묵

이사벨라아나 2017. 6. 25. 22:39

 

내 이름은 빨강 - 오르한 파묵

 

터키의 노벨문학상 작가 오르한 파묵

그의 책은 소설 '순수박물관'과 비소설 '소설과 소설가들'에 이어 세번째인데

앞의 두책과 전혀 다른 스타일로 터키의 또다른 문화가 고스란히 들어있다.

 낯설은 세밀화가들의 장인정신과 그들의 작업에 관한 치밀한 묘사가 흥미로웠다.

최고의  세밀화가들을 중심으로 그들 사이의 질투와 긴장감사이에서 

살인이 벌어지고 그 살인범을 찾는 추리소설이 되기도 하고

카라와 절세미인 세큐레의 아슬아슬한 러브스토리이기도 하고

수백년간 이어온 이슬람 전통이 깃든 역사소설이기도 하다.

오르한 파묵의 세세한 취재로 밀도있게 펼쳐지는 스토리는

독특한 형식으로 이어지는데

이슬람 회화의 쇠퇴기로 접어들었다는 비애와 더불어

살인으로 인한 다소 슬프면서도 어두운 이야기지만

읽는 내내 다양한 형태로 이어지는 것이 새로웠다.

========================================

책속에서...

 

1권

 

그림은 이성의 침묵이며 응시의 음악이다. - 110

 

진정한 화가와 그렇지 않은 화가들을 구분하는 것은 시간이라고 하셨네 - 125 -

 

500년 동안 페르시아 필경사들의 가슴속에 있던 영원한 시간의 개념은

글씨가 아니라 그림에서 실현되리라는 것이 분명해진다.

비록 책은 제본이 뜯겨 없어지더라도,

그 안에 있던 그림들은 다른 책들 속으로 끼어 들어가 영원히 살아 있음으로써

신의 세계를 계속 보여주는 것이다. -128

 

안다는 것은 본 것을 기억하는 것이며,

본다는 것은 기억하지 않고도 아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어둠을

기억하는 것이다. 그림을 사랑하고,

색채와 시각이 어둠으로부터 나온 것임을 인식한

위대한 화가들은 색을 통해 신의 어둠 속으로 돌아가기를 갈망한다. - 136

 

늙는다는 건 단지 언덕을 힘겹게 올라가는 것만이 아니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는 것일 수도 있다.

그것은 의욕 상실이기도 하다. -168

 

"본질은 이야기니라. 멋진 그림은 이야기를 우아하게 완성시켜 주는 게야.

이야기를 보완하지 못하는 그림은 결국 우상이 될 것이다.

존재하지 않는 이야기는 우리가 믿지 않을 것이므로

결국은 그림 자체를 믿게 되지 않겠느냐.~" - 192

 

슬픔이나 이별, 질투, 외로움, 적대감, 눈물, 소문 그리고 영원히 되풀이되는 가난같은 건

집 안의 살림살이들처럼 항상 서로 비슷하답니다. - 231

 

"세밀화가는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자신이 믿는 원칙에 따르고

그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아야 비로소 진정한 자신만의 예술 작품을 창조할 수 있네.

그는 적이나 광신도, 시기하는 자들이 뭐라고 하든 개의치 않지." - 280

 

자신의 초상화를 한번 보면, 자네도 자기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는 전혀 다르고,

유일하며, 특별한 그리고 독특한 창조물이라는 것을 믿고 싶을 거야.

이성의 눈에 비친 것과는 다르게 실제의 눈에 비친 대로,

새로운 스타일로 인간을 그리는 기회를 얻게 되는 걸세. - 294

 

나는 빨강이어서 행복하다! 나는 뜨겁고 강하다. 나는 눈에 띈다.

그리고 당신들은 나를 거부하지 못한다. - 321

 

"그럼 가장 중요한 게 뭐란 말이요?"

" 행복이죠. 사랑과 결혼도 행복해지기 위해서 필요한 거예요. ~" - 329

 

2권

 

침묵이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어두운 꽃처럼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 12

 

금세 모든 것이 새빨갛게 되었다.

이 색의 아름다움은 나의 내면과 온 세계로부터 나오고 있었다.

그분에게 가까워질수록 나는 기뻐서 울고 싶어졌다. - 50

 

나의 세밀화가들의 붓이 닿은 곳이 각각 어느 부분인지 대번에 식별할 수 있는,

대단히 복잡하게 구성된 어떤 그림에 적용된 빨간색의 정렬 방식은 나를 두렵게 했다. - 84

 

모든 살인자들은 우리의 생각과는 정반대로,

무신론자들이 아니라 광신도들 사이에서 나온다.

필사본의 채색은 회화를 낳으며,

회화는 신께서 금하신 행위, 즉 신에 대한 도전을 낳는다. - 95

 

화가의 개성은 소재에 접근하는 과정에서

그림에 반영된 화가의 숨겨진 감수성을 통해서 드러나네.

그림에서 뿜어져 나오는듯한 빛, 인물과 말과 나무들의 구성에서 느껴지는,

손에 잡힐 듯 생생한 머뭇거림 또는 분노,

하늘로 뻗어 올라가는 사이프러스 나무로 표현되는 바람과 슬픔,

결국은 스스로를 장님으로 만들 열정으로 벽의 타일에 그림 장식을 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화가의 운명과 인고의 자세......

이런 것들이 우리를 말해 주는 숨겨진 표식들이라네.

어떤 말의 분노와 질주를 그릴 때

세밀화가는 자신의 분노와 질주를 그리지 않는다네.

가장 완벽한 말 그림을 그리려고 노력하면서 세상의 풍성함과 그것을

창조한 이에 대한 사랑, 삶에 대한 사람의 빛깔들을 보여줄 뿐이지 -104

 

세밀화가의 기억이란 어떤 이들이 끈질기게 주장하는 것과는 달리 손이 아니라

지성과 마음에 있다고 여겼으며,

신이 "보라!"고 했던 진장한 그림들과 광경들,

진짜 말과 결함 없는 말을 자신은 장님이 된 후에 비로소 보았다고 말했다. - 139

 

졸면서 꾸는 꿈과 불행한 기억들 사이에서 때때로

신이 우리에게 관심을 집중한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 156

 

이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고 말씀하셨네.

첫 번째는 어린 시절 맞은 매의 영향으로 항상 억눌려 있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언제까지나 억눌려 있을 거라고 어머니는 말씀하셨지.

왜냐하면 매는 그 목적대로 인간 내부의 악마를 죽이기 때문이야.

두 번째 부류는 매로 인해 내부의 악마를 죽이지 않고, 오히려 그를 위협하고 잘 길들인 운 좋은 사람들이지.

물론 그들도 어린 시절의 나쁜 기억을 절대로 잊지는 못한다네. - 2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