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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故고 마티아 파스칼이오 - 루이지 피란델로

이사벨라아나 2016. 12. 5. 19:53


나는 故고 마티아 파스칼이오

루이지 피란델로

문학과 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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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루이지 피란델로는

이탈리아 시칠리아섬 출신으로

상류층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그의 삶은 개인적으로는 고통스러웠으며

이탈리아 또한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웠던 시대의 반영과 더불어

 방대한 작품을 남겼는데

이 책은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소설은 마티아 파스칼이 1인칭으로 쓰여진 자신의 기록을 도서관에서 함께 근무하는

돈 엘리지오 신부에게 맡기면서 자신이 죽은 후 50년이 지난 다음 공개할 것을 부탁한다.

소설은 현재시점에서 시작해 과거

아버지의 죽음으로 가난과 잘못된 결혼, 거듭되는 불행으로 인해

잠시 방황하는 사이 도박에서 크게 돈을 따서

다시 집으로 가는길 기차안에서 자신이 죽었다는 기사를 접하게 된다. 

그후 아드리아노 메이스란 이름으로 살아가기로 결심한 후 로마에 정착하는데....

실체가 없는 가면으로 살아가기에는 현실에서 부딪히는 문제로 철저히 자유인으로 살아가기가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자살로 위장한 후 다시 마티아 파스칼로 되돌아가기를 희망하지만

이미 부인은 친구와 결혼을 하고 아이까지 낳은 상황까지 되어버려 그것조차 불가능함을 알고

도서관에서 그저 무능한 삶을 살며

자신이 부딪힌 상황을 다른사람의 그것처럼 관조하면서 

웃어넘기는 버릇을 갖게 되는데

현실에서 일어날 법하지 않은 일들이 실제로는 지극히 가능하다는 점이 책 후기에

신문기사의 요약을 들며 인생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예술을 모방하고 있음을 상상의 이야기인 허구인 소설을 통해 일러줄 수 있다는 것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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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서


우리는 한줄기 태양광선을 채찍 삼아 쉼 없이 회전하는 보이지 않는 팽이 위에 살고 있지 않습니까? 그 연유도 모른 채, 결코 목적지에 도달하지도 못하면서,

우리에게 때로는 더위를 때로는 추위를 선사하고, 혹은 쉰 번쯤 혹은 예순 번쯤 회전한 후에는 죽음을 - 대개는 어릭석은 짓만 범했다는 아쉬움과 함께-

선사하기 위해 그저 그렇게 돌고 도는 데에 재미 붙인 양 미친듯이 회전하는 모래 알갱이 위에 우리가 놓여 있는 것 아닐까요? - 13


나는 이때부터 나의 모든 불행과 고통을 웃어넘기는 버릇이 생겻다. 그 순간 나는 꼭 비극 배우와 같았다.

이보다 웃어넘기는 비극은 상상하기 조차 어렵다. - 59


바다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극심한 공포감에 사로잡혔고 점점 참기 힘든 중압감이 나를 짓눌렀다. 모래시장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바다를 보지 않으려고 외면했다.

그래도 귓가에는 해안 구석구석으로부터 해조음이 들려왔다. 나는 손가락 사이로 무겁고 축축한 모래를 아주 천천히 흘려보내면서 중얼거렸다.

"이렇게, 영원히, 죽을 때까지, 한 치의 변화도 없이 살다...."

결코 변하지 않을 그러한 내 존재의 정체감으로 인해, 즉흥적인, 이상한 생각들이, 말하자면 섬뜩한 광기 같은 생각들이 일었다. - 67~68


인간의 허영심이란 때로는 모욕적인 숭배나 유해한 악취가 진동하는 비천한 아첨마저도 거부하지 못하는 법이니까, 나는 그야말로 절망적이고 처절했던

전투에서, 어쩌다 보니, 우연히 승리한 장군과도 같았다. - 86


그러나 어쩌면 이것이 진실 아닐까, 경계가 없는 무한한 내 자유안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삶을 시작하기는 녹록지 않았다. 내가 무슨 일이든 하려고

할 때면 사사건건 무언가가 나를 방해하는 것 같았고, 매번 수많은 방해와 음영과 장애물들이 눈앞에 보이는 것만 같았다. - 141


"천만에요, 내가 뒤집어쓰고 있는 이 보잘것 없는 이따위 거죽에 왜 관심을 갖지 않는지 아세요? 아무리 귀찮아도 견딜 수밖에 없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만약 - 내가 앞으로 5년이나 6년 혹은 10년 더 참고 견딘 다음에 -  아무런 대가를 치르지 않아도 된다면, 즉 모든 게 그대로 끝난다면 오늘 당장

껍데기 따위는 벗어던질 겁니다. 그렇게 되면 생존본능이고 뭐고 어디에 있습니까? 하지만 그렇게 끝나지는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저 내 자신을

생존케 할 따름입니다." - 158


"이곳에서는 어떠한 사업도 성공할 수 없으며 살아 있는 어떠한 사상도 뿌리를 내릴 수 없다는 것에 많은 이들이 경악을 금치 못합니다. 그러나 이들이

경악하는 이유는 바로 로마가 죽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려 들지 않기 때문이죠."

"로마도 죽었다는 말씀입니까? " 나는 어리둥절해 소리쳤다.

"아주 오래전에 죽었답니다 메이스씨!

소생시키려는 노력은 다 부질없는 노릇입니다. 그 웅대했던 과거의 꿈속에 갇혀 제 주변이 집요하게 모여드는 이 처참한 삶에 대해서는 애써 외면하고

있습니다. 어떤 도시라도 로마처럼 그토록 독특하고 도드라진 성격을 지닌 생을 누리고 나면 근대적인 도시로, 즉 전혀 다른 도시로 변화될 수 없습니다.

로마는 산산조각난 자신의 거대한 심장을 끌어안고서 저기 저 감피돌리오 언덕에 나자빠졌어요. 새로 지은 이 집들이 로마의 것일까요?

보십시오. 메이스씨, 제 여식이 선생님 방에 있던 성수반에 대해 말하더군요. 기억나십니까?

아드리아나가 선생님 방에서 그 성수반을 내왔지요. 그런데 그저께 그 아이가 그만 그걸 떨어뜨려 깨고 말았어요. 겨우 큰 조각 하나만 남았는데

지금 제 방 책상 위에 놓여 있습니다만 그걸 이제 어디다 쓰겠습니까? 선생께서 실수로 그랬다지만 그때처럼 재떨이로나 쓸 수밖에요. 그런데 메이스씨,

로마의 운명도 똑같습니다.

역대 교황들은 이 도시를 나름대로 성수반으로 사용해왔고, 우리 이탈리아인들은 또 우리 나름대로 재떨이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우리는 전 세계 곳곳에서

모여들어 여기다 담뱃재를 떨고 갑니다. 즉, 우리들의 이 불쌍한 인생의 경박함과 또 그 인생이 우리에게 자져다주는 쓰고 독이 든 쾌락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그 담뱃재를요." - 160~161


나의 위선의 쪽배는 지레와 버팀목 역할을 하는 거짓말이라는 노를 저어 암초같은 당혹스러운 처음 질문들을 피하고,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는 새 암초를

피하기 위해 양손의 노를 힘껏 저어 조심스럽게 천천히 돌아 나와, 공상의 돛을 올리고 더 넓은 바다로 입성할 수 있었다. - 172


영혼은 우리들의 신체가 여전히 여러 가지 사회적 요구와 굴레 속에서 평범한 말들의 교제에 머무는 것과는 달리, 서로를 이해하고 존대않고 말을 틀 정도로

친밀한 관계로 들어가는 특별한 방식을 갖고 있다. 마음에는 그것만의 본연의 욕구와 야망이 존재하는 법인데, 육체는 그 본연의 욕구와 야망을 충족시키고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것이 불가능함을 알게 되면, 그것들을 아예 모른 척 외면하고 만다. 오직 그렇게 마음만으로 서로를 소통하는 두 사람이 어쩌다 어디서

단둘이 있게 되면 당혹감에 고통스러워하며 아무리 사소한 신체적인 접촉에도 격한 반감을 느끼고 마치 두사람을 떼어놓는 것 같은 고통을 느끼게 되지만,

또 제삼자가 개입하면 어느새 그 고통은 말끔히 사라지게 된다. 고통이 지나가면 홀가분해진 두 사람은 서로의 모습을 되찾고 멀찌감치 떨어져서 다시 서로에게

미소짓게 된다 - 178


길을 잃고 지상에서 헤매는  우리들에게 빛을 비워주고 또 우리들에게 선과악을 깨우쳐주는 작은 등불, 우리 둘레에 빠짐없이 빛을 투사해 제법 넓은

빛의 권역을 이룩하고 그 너머에 시커먼 음영을 드리우는 작은 등불, 만약 그 등불이 우리 내면에 켜지지 않았다면 공포스러운 음영은 존재하지 않았을

테지만, 등불이 우리들 내면에 활활 타고 있는 한, 우리는 그 음영을 실재로 믿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결국에는 가벼운 입김에도 꺼져버릴 등불이

일단 꺼지고 나면, 우리들의 환영으로 가득 찬 낮이 끝나고, 영원한 밤이 우리들을 삼켜버리거나, 혹은 우리들의 논리의 헛된 형상들을 파괴한 저 절대자의 뜻에

맡겨지는 그런 것이라 했다 - 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