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유영국 - 절대와 자유 (덕수궁 국립현대미술관)

이사벨라아나 2016. 12. 21. 19:47



유영국 - 절대와 자유

덕수궁 현대 미술관

2016년 12월 17일


유영국은 김환기와 함께 우리나라 최초의 추상화가다.

변월룡, 이중섭과 같은 해에 태어나서 세분이 나란히

올해 100주년 탄생 기념 전시를 열었다.

이중섭이 타고난 천재화가라면

유영국은 만들어진 화가라고 불릴 만큼 열정과 노력이 대단했다고 한다.

서양화가이자 추상예술가인 유영국은

강원도(지금은 경북) 울진에서 부유한 가정의 아들로 태어나

미술공부를 하기 위해 일본으로 유학을 했다.

(일본에서 영향을 받은 스승의 작품)

(일본 체류기때의 작품으로 베니어판을 자르고 이어 붙인 단순화된 기하학적 형태만으로 구성된 부조들이다.)


(도쿄 전시장에 전시되었던 작품의 사진과 그 앞에는 일본스승의 작품들이다)


60년대에 들어서면서 회화로 돌아와 산, 언덕, 계곡, 노을 등 자연의 요소들을

점차 추상화해나가 형태를 단순화하고 색채의 조화를 추구하면서 표면의 재질감을 살리는

방식을 탐구해 나갔다고 한다.

64년 첫번째 개인전을 치렀지만 74년에 되어서야 첫 작품이 팔렸다고 한다.

 작품의 가격이 너무 높아 주로 기업체나 개인소장이 많아

잘 볼 수 없어 처음 공개되는 작품들이 많다고 한다.


그의 작품에서는 색채의 강렬함을 느낄 수 있다.

비정형적인 형태에서 기하학적인 형태로 나아가면서 색채 또한

빨강, 노랑, 파랑을 기반으로 보라나 초록 등 다양한 색감의

미묘한 변화를 주면서 절묘한 조화를 이루어짐을 알 수 있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실경이라는 관념이 새로 들어왔는데

실경산수란 바로 앞에 뭔가가 있으면 그것을 그대로 보고 그리는 것인데

그전까지는

진경식 산수나 관념식 산수로

  보이는 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보고 있는 것이

내마음속에 어떻게 읽혀지는 지를 그렸다고 한다.


재료가 화선지,먹, 붓 밖에 없어서 그때 당시 표현이 제한되어

상대적으로 화선지에 먹이 어떻게 멋들어지게 번지는지 아니면

필선의 개성적인 표현들이 발전되었다고 한다.


먹보다 훨씬 더 강력한 무기가 생겼는데 그것은 바로 색이었다.

화폭에서 표현하고 싶은 색을 얼마만큼 효율적으로 표현할까 생각해서

화면안에 조화, 균형, 비례를 맞추기 시작하면서

화면이 점점 차분해지는데 대신 과감한 붓터치가 사라졌다.


그 이유는 붓터치가 난무하다보면 균형이 깨질 수밖에 없어

자연스럽게 붓터치를 나이프로 밀어버리는 방법을 선택하는데

화면의 완벽한 균형속에서 색의 아름다움이 눈에 띈다고 한다.

(자신의 카메라와 직접 찍은 사진들)



전시장에서 꼭 유영국의 작품을 봐야만하는 첫번째 이유는

노란색만 보더라도 미묘하게 보면 보라 등등 하게 올라온다.

그의 작품의 작업스타일이 밑에 밝은 색하나만 하는게 하니라

짙은 보라색, 아니면 짙은 파란색 등을

겹겹이 계속 쌓아 나가다가 자기가 칠하고 싶은 노란색을 얹는다.

밑에 색들이 싹 스며들어 노란색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미묘하게 나타나는

색을 그대로 볼 수 있는데 이런 작품들은 도판에서는 느낄 수가 없다.

그러한 그림들이 점점점점 완벽한 균형을 취하고 기하학적인 추상으로 변하게 된다고 한다.










70~90년대의 작품은  60년대처럼 솟지는 않는다.

그대신 가장 맘편하게 아름답게 볼 수 있는 작품들이라고 할 수 있다.

나란히 걸려있는 4점은 고향에 대한 애착이 강한 작가가 

 고향에 자주가기 못하기 때문에 눈을 감고 떠오르는 이미지와 색을 잡아서 그렸다.

이런 그림은 시간의 아주 극사실의 표현보다도 마음에 와 닿을 때가 있는데

4점의 그림에 산과 바다, 청정해역, 노을 등이 그대로 담겨있음을 알 수 있다.

(작가의 7평이 채 안되는 비좁은 작업실을 재현해 놓았다.)


추상미술의 선구자였던 유영국의 작품은 유독 '산'이라는 제목이 많은데

자연의 미가 담긴 그의 기하학적 추상화들은 원색의 색채가 아주

강렬하면서도 역동적인 에너지를 발산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