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다니엘 글라타우어 장편소설
김라합 옮김
문학동네
휴가때 가볍게 읽을 책으로 비교적 얇은 이 책을 선택했다.
전혀 알지 못했던 남녀가 우연히 철자 하나 잘못 쓴 실수로
보내진 이메일로 인하여 시작되는데
꼬리에 꼬리를 물듯 이메일은 끊길 듯 하면서도 끊기지 않으면서 계속된다.
사실 잘못보내진 이메일에 대해 답장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제는 잘 쓰지 않는 이메일로만 소통하는 형식이지만
나름대로 재밌다.
홈페이지를 만드는 웹디자이너인'에미'는 이미 결혼을 해서 아이가 둘이나 있는 여자
언어심리학자이자 대학교수인 '레오'
두사람은 이메일을 통해 서서히 친구가 되고 마음속 이야기를 터놓게 된다.
자신의 결혼생활에 관심을 갖지 말라면서도
레오의 여자친구에 대해서는 시시콜콜 알고 싶어하는 에미와
현실에서의 만남을 갈구하는 레오와의 사이에서 벌어지는 밀당은
책 마지막까지 이루어지지 않아 약간은 허탈했지만
오히려 만남으로 인해 깨어질 거 같은 그들의 관계가 끝까지 밀도있게 펼쳐졌다.
짧고 단순한 두사람이 나누는 이메일 속에
누군가가 보이지 않는 환상속의 인물이 되어
오로지 컴안에서만 다가올 때
한번쯤은 그런 나만의 환타지 속 인물이 있는 것도 참 매혹적일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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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서
우린 행간을 읽으려 애쓰고 낱말과 낱말, 철자와 철자 사이에 숨은 뜻을 읽으려 애쓰죠.
상대방을 평가하려고 안간힘을 써요. 그러면서도 자신의 본질적인 면만은 드러내지 않으려고
철저하게 조심 또 조심해요.
'본질적인'것이라는 게 뭘까요? 우린 자리 생활에 대해 얘기 한 적이 없어요.
자신의 일상을 이루는 것들에 대해, 자기에게 중요한 무언가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지요. - 33
'현실의 삶'에서는 무난하게 버텨나가려면 끊임없이 자기 감정과 타협을 해야해요.
이럴 땐 과잉 반응을 해선 안돼! 이건 받아들이는 수 밖에 없어!
이 상황에서는 그걸 못 본 척해야 해! 이런 식으로 끊임없이 자신의 감정을 주위 사람들에게 맞추고,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아량을 베풀고, 일상에서 오만 가지 자질구레한 역할을 떠맡고,
구조 전체를 위태롭게 하지 않으려면 균형을 잘 잡아 평형을 유지해야 해요.
저 또한 그 구조의 일부니까요. - 169
가깝다는 것은 거리를 줄이는 게 아니라 거리를 극복하는 거예요. 긴장이라는 것은
완전함에 하자가 있어서 생기는 게 아니라 완전함을 향해 꾸준히 나아가고
완전함을 유지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데서 생기는 거예요. - 184
지나간 시절은 어디까지나 지나간 시절이고, 새로운 시절은 지나간 시절과 같을 수 없어요.
지나간 시절은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늙고 쇠잔해요.
지나간 시절을 아쉬워해서는 안되죠.
지나간 시절을 아쉬워하는 사람은 늙고 불행한 사람이에요. - 292
이메일을 매개로 한 환상의 사랑, 끊임없이 고조되는 감정,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그리움,
가라앉을 줄 모르는 열정, 이 모든 것이 현실에서의 만남이라는
하나의 진짜 목표, 지고의 목표를 향하고 있지만, 목표 실현은 번번이
미뤄지고 만남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실제 만남은 종착지도 없고 만료 기한도 없이 오로지 머릿속에서만
완벽하게 누릴 수 있는 세속적인 행복을 깨뜨릴 테니까요. - 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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