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클래식 공연을 보러 갔는데 주제가 '책속의 클래식'이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에 음악이 많이 나오지만
1Q84 이후 별로 끌리지 않아 애써 외면했는데 서점에서 이 책이 눈에 띄길래
책속에 나온 리스트의 '르 말 뒤 페이' 피아노곡이 어떤 내용으로 나왔는지 궁금했다.
'순례의 해'라는 전원 풍경이 사람의 마음에 불러일으키는 영문 모를 슬픔 또는 향수, 멜랑꼴리라는 뜻이 있다고 한다.
피아노 연주자가 책에 언급된 라자르 베르만이라는 러시아 피아니스트에게 사사를 받았다는 이야기도 들었는데
작가의 해박한 음악적 지식이 담겨있어 호기심을 갖고 있다가 결국은 구입하고 말았다.
소설의 줄거리는
이름속에 아무 색채도 담겨있지 않고 이렇다할 특징이나 개성이 없는 다자키 쓰쿠루의 이야기다.
고등학교 시절 친하게 지냈던 네명의 친구들로 부터 어느날 절교 선언을 당하면서
심한 자살 충동까지 느끼면서 죽음의 문턱까지 까지만 다행히 일상생활로 돌아와 지극히 평범한 삶을 이어가다
최근에 만난 여자친구 사라의 권유로 16년동안 소식을 끊어왔던 옛친구들을 찾아 나서는데...(생략)
그냥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
책 속에서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때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신문도 읽지 않고 음악도 듣지 않고 성욕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어떤 일도 그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방에만 틀어박혀 지내다 피로해지면 밖으로 나와 근처를 하염없이 걸었다. 또는 역으로 가 벤치에 앉아서
들어고고 나가는 전차를 언제까지나 바라보았다. - 9 -
"라자르 베르만, 러시아의 피아니스트인데 섬세한 심상 풍경을 그리듯이 리스트를 치지요. 리스트의 피아노곡은
일반적으로 기교적이고 표층적이라는 평을 받아요. 물론 개중에는 기교 위주의 작품도 있지만
전체를 주의깊게 들어 보면 내면에 독특한 깊이가 깔려 있다는 걸 알게 되죠. 그러나 그런 것들은 대부분 장식 속에
교묘하게 감추어져 있어요. 특히 이 '순례의 해'라는 소곡집이 그래요. -80 -
재능이란 말이야, 하이다, 육체의 의식의 강인한 집중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기능을 발휘해. 뇌의 어느 부분에서
나사가 하나만 빠지거나, 아니면 육체의 어딘가 연결선 하나만 툭 끊어지면, 집중 같은 건 새벽 안개처럼 사라져 버려 - 104 -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합의한 시점에서 자네에게는 평범하지 않은 자질이 생겨, 특별한 능력이라고 해도 좋아.
사람들이 내는 각각의 색깔을 읽어 낼 수 있는 건 그런 능력 가운데 하나일 뿐이야. 그 근원에는 자네가 지각
자체를 확대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 깔려 있어. 자네는 올더스 헉슬리가 말하는 '지각의 문'을 열어젖히게 돼.
자네의 지각은 티끌 하나 없는 순수에 이르지. 안개가 걷힌 듯 모든 것이 밝아져. 그리고 자네는 보통 사람이
볼 수 없는 정경을 조망하는 거야." - 111 -
쓰쿠루는 어둠 속에서 말을 찾았다. 특정한 누군가를 향해 던질 말이 아니다. 다만 거기에 있는 침묵과 익명성의 틈을
메우기 위해서 올바른 말을 하나라도 찾아내야 했다. 화장실에서 하이다가 돌아오기 전에, 그러나 그것을 찾을 수
없었다. 그사이 줄곧 그의 뇌리에는 간결한 하나의 멜로디가 반복해서 흘렀다. 그것이 리스트의 '르 말 뒤 페이'의
주제라는 것을 알아차린 것은 나중의 일이었다. 순례의 해, 제1년, 스위스, 전원 풍경이 사람 마음에 불러일으키는 우울. - 144 -
"기억을 감출 수는 있어도 역사를 바꿀 수는 없어." - 230 -
다자키 쓰쿠루에게는 가야 할 장소가 없다. 그것은 그의 인생에서 하나의 테제 같은 것이었다. 그에게는 가야 할 장소도
없고 돌아갈 장소도 없다. 예전에 그런 게 있었던 적도 없고, 지금도 없다. 그에게 유일한 장소는 '지금 이 자리'이다. -419 -
'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 다니엘 글라타우어 (0) | 2015.07.28 |
---|---|
자기 앞의 생 - 에밀 아자르 (문예출판사) (0) | 2015.07.12 |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 도스토예프스키 (0) | 2015.06.30 |
안나 카레니나 - 레프 톨스토이 (0) | 2015.04.10 |
불안의 서 - 페르난두 페소아 (0) | 2015.03.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