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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스 브로드 1,2 - 팻 콘로이

이사벨라아나 2009. 11. 11. 21:16

 

 

사십대 중반의 나이에 읽게 된 책이어서 일까? 다읽고 책장을 덮었을 때 나또한 짧지 않은

나의 지나온 일생을 반추해보게 되었다.

가끔은 추억속의 어린시절을 헤매며 별 사건은 없어도 막연히 그때로 돌아갔으면 하는 바램을 갖기도 하지만

인생이란 별 특별한 것이 있나 하는 생각에 그저 현실에 안주하며 살지 않았나 하는 나름대로의 아쉬움이 있다.

 

이 책을 쓴 작가 팻 콘로이. 과연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의 끝없이 펼쳐지는 유려한 문체는

내 보라색 색연필로 어김없이 밑줄을 긋게 만들었다. 어쩌면 표현들이 그렇게 섬세하고 서정적인지

책을 읽는 내내 읽은 부분을 다시 읽고 또 읽고 했다.

 

미국 사우스 캐롤라니아주의 한 도시인 찰스턴. 작가의 표현대로 '애슐리강과 쿠퍼강이 양쪽으로 흐르고 

바다로 둘러싸여 반도형을 이루고 있는 남북전쟁의 시초가 되었던 화려한 고층건물이 즐비한 도시가 아니라

낡고 작지만 특별히 개성이 넘치는 아름다운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아주 소박하지만 매혹적인 도시'에서

부모님마저 그곳 출신으로 토박이라 불리우며 그 도시와는 뗄레야 뗄 수 없는 운명적인 관계에 놓인

주인공 레오포드 블룸 킹의 이야기다.

 

차분하고 평범한 어린시절을 보내던 중 그의 보호막이자 친구이며  우상이었던 어느모로 보나

완벽한 형 스티브의 충격적인 자살로 인해 그순간부터 그의 삶도 패자의 길로 향할 수 밖에 없다.

못생기고 지독히 수줍음을 타며  두꺼운 안경을 끼어 눈이 불룩 튀어나와

개구리 같아 별명이 두꺼비라 불리며 어디에도 어울리지 못하는 왕따를 당하며

철처하게 외톨이가 되어 끊임없이 문제를 일으켜 

방황하고 표류하며 심지어는 정신병원까지 드나들고 결국에는  

뜻하지 않은 마약사건으로 연루되어 보호감찰 대상이 되어

신문배달과 자원봉사를 하게 된다.

 

고등학교 교사인 아버지와 역시 같은 고등학교 교장인 수녀출신의 어머니 사이에 남부러울 것

없을 것 같은 가정에서 태어나 다행히 부모의 적극적인 노력과 참을성있게 기다려준 덕분으로

보호감찰대상기간인  3년동안 주어진 일을 열정적으로 최선을 다하면서 스스로 슬로 스타터라 여기며

최악의 고립상태에서 벗어나고자 나쁜 운명을 버리고 세상과 당당하게 맞서는 그.

사우스 브로드가에서 사소한 신문배달이지만 늘 정확하고 고객의 요구에 최선을 다하면서

미래를 꿈꾸는 소년으로 바뀌어간다.

부지런함과 성실함으로 신뢰를 쌓은  열여덟살의 레오는  어느날 무렵에 옆집에 이사온 같은 또래의

남녀쌍둥이들과 부자집 출신이지만 말썽을 피워 전학온 남매와 그의 여자친구, 고아출신의 남매,  

풋볼 코치의 아들 등을 만나게 되면서 그들은 평생 그의 인생과 함께 한다.

또한 그 속에서  흑백간의 인종 갈등에서 부터 자살, 강간, 살인 등

별로 유쾌하지 않은 갖가지 일들이 작가의 화려한 필체에 의하여 장황하고 세밀하게 표현된다.

 

찰스턴이라는 아름답고 행복한 도시에서 아버지가 다닌 대학교를 나오고

자신이 자원봉사를 했던 골동품가게 주인으로부터 적지않은 유산을 물려받고

신문배달일을 한 신문사에서 칼럼을 쓰는 비교적 명성이 있는 칼럼리스트로 활동하며 

그와 함께 어릴 적 친구들도 겉으로는 나름대로 성공(?)하여  주위에 살면서 서로 부대끼며 사랑하며

그들이 가진 지극한 아픔마저 함께 하는 삶의 여정이 서사적으로 펼쳐진다.

 

하지만 아리따운 여배우로 성공했던 친구 시바의 죽음과, 정서불안으로 끊임없이 집을 나가

스스로 타락한 삶을 살며 괴롭히는 아내 스탈라의 사망소식에 마치 일기예보를 듣듯이 감정이 일어나지 않음을,

에이즈에 걸린 동성애자인 트레버의 사소한 짐속에서 발견된 낡은 비디오 테이프에서 보게 된

어머니를 비롯 가족들이 평생 멘토로 의지한 카톨릭 주교의 성추행으로 인한

자신의 형에 대한 죽음에 대해서 알아야 했을 때

사제의 병실에서 죽어가면서 까지 우쭐해 하던 사제의 태도에 대해 분노하면서

그에 대한 저주의 칼럼을 쓰면서 막무가내의 슬픔을 느끼고

스스로의 삶에 대해 '경험한 것은 많았지만 배운 것은 별로 없었다'고 하면서

일기에 "타고난 배우에게 '진짜 삶'이란 있을 수 없다" 라는 한 줄을 쓴다.

 

이 책에서는 운명이란 '장난감 총을 쏘듯 사람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그 삶을 만신창이로 만들고, 바로 그날을 영원히 잊지 못할 날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 존재다'

라고 마무리 지으면서 어떤 운명이라고 받아들이겠다는 결연성이 보인다.  

 

사회적으로는 성공하지만 가족적으로는 결코 행복하다고 할 수 없는,

형의 자살과 아버지의 심장마비로 인한 죽음, 아내와의 불행했던 결혼생활,

그리고 수녀원으로 다시 돌아가는 어머니를

배웅하며 다시 혼자가 되는 그의 인생에서 책상에 앉아 자신의 삶을 회고하는

레오에게서 과연  생에 있어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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