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들은 다 일가친척이다' 처음 제목을 보았을 때 사람도 아닌 길에서 일가친척이라고 연관을 짓는 작가가 시인이라는 것 외에는 잘 알지 못하지만 지극히 인간적인 냄새가 풍긴다고 할까? 그저 막연하게 정이 많은 사람일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 시인의 사생활을 엿볼 수 있는 에세이라는 것에 강한 호기심이 생겼다. 그의 글은 '떨림'이라는 책에서 잠깐 보았는데 거기서 옛애인의 전화에 가슴떨려 하던 시인의 순박함에 세상의 때라고는 전혀 묻지 않았을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강화도에 살아서 강화도시인이라고 불리우는 함민복시인. 몇 년전에 지인들과 강화도에 1박 2일 간 적이 있다. 석모도가는 길에 배를 타고 가면서 새우깡을 뿌리며 내내 달라붙는 까마귀들이 정겨웠고 갯벌에 스멀스멀 기어나니는 게도 눈에 많이 띄어 신기했다. 마니산을 비롯하여 낮은 산도 많고 섬속의 넓은 평야와 염전 등 드넓은 자연이 마치 섬 아닌 곳에 와있는 느낌이 들었던 기억이 아스라이 떠오른다. 계단위로 이어진 보문사의 눈썹바위 마애불상에서 108배를 드리는 지인을 기다리며 비록 불자는 아니었지만 나름 숙연해지는 감상에 젖기도 했었다. 강화도는 더군다나 우리나라의 비참한 역사와 관련이 많은 지역이라 지나간 아픈 과거의 흔적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한번 방문한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 강화도라는 말만 들어도 다시 가보고 싶은 곳이다.
'눈물은 왜 짠가'라는 시로 잘 알려진 이웃아저씨 같은 푸근하고 정감있는 그야말로 서민적인 삶을 살아가는, 별로 특별하지도 않고 내세울 것 없지만 그의 글 속에는 시와 더불어 어린시절의 아련했던 추억이 소담스럽게 묻어나고, 가난하고 소탈하지만 섬세한 부분도 없지 않고, 지극히 시골스러움 삶 의 이면에는 왠지 모를 혼자사는 남자의 고독감마저 스물거린다.
자신의 요즘 살아가는 일기도 있고, 젊은날의 아픈 회고와 타인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일상적 사색이 담겨있기도 하다. 특히 강화도와 함께하는 그의 잔잔한 살아가는 이야기들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 그 자체로 다가온다. 결혼도 하지 않은 사십대의 총각이 지인의 주례를 서기 위하여 2시간이나 먼저 결혼식장에 도착해 예행연습을 하기 위해 준비하는 사람. 내륙에 살아 바다를 보고 한눈에 반해 삶의 터전으로 바꾸어버리고 바다와 함께 살며 틈틈이 시를 쓰면서 낙지를 잡는 한량같은 사람이기도 하다. 병이 든 어머니에게서 산소 호흡기를 산소코뚜레라 비유하며 자기자신의 존재도 모르면서 타인을 어찌 알랴 하면서 어머니와의 같이 살았던 행복한 순간들을 기억하며 어머니의 회복을 기원하는 그의 마음과 집에 대한 단상에서 자신의 소유로 된 집한채없이 임대로 사는 집에게 자신의 적나라한 사적인 비밀을 들켜버린다는 수줍은 고백을 하는 시인.
봄을 보내면서는 '부드러우면서도 톡 토리지며 시샘도 하는 바람과 화려하면서도 따듯함을 잃지 않는 꽃과 달뜬 새소리 수놓은 봄편지'와 안녕하며 지나간 세월을 자연의 변화와 더불어 버스는 가다 서다 이 길을 반복하며 지나가듯이 우리내 인생도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등사의 대웅보전의 전설로 유명한 이야기중 전등사 추녀를 받치고 있는 나부상에 대한 잘못된 유래도 허균의 '사찰100 미 100선'이라는 책을 근거로 여인상은 나부상이 아닌 외호신 중의 하나인 나찰상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한다.
어느 작가는 '잠언이 들어있는 소설'을 좋아한다고 했는데 이 책을 통해서 강화도에 대한 역사에 대해서 간략하지만 개략적으로 알 수 있었다. 길들은 다 이어지고 진화와 퇴화의 끊임없는 반복을 통해 서로 만나기에 일가친척일 수밖에 없다는 그의 논리가 정리의 계절인 가을에 한번쯤 자신의 지나온 인생길을 생각하며 주변인들을 좀 더 사랑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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