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작가 김영갑.
그의 사진을 들여다 보면 마치 자연이 살아 움직이는 느낌이 든다.
한순간의 마음에 드는 장면을 포착하기 위해 하루이틀은 기본이고 기약도 없이 마냥 기다림.
자신의 길을 걷기 위해 사랑하는 여인과 가족마저 인연을 끊고
홀연히 떠나 제주라는 섬에 이르러 그곳에 정착하게 된다.
만족할 수 없는 생활을 영위하기 전에는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했다는데
그의 인생은 처절하리만치 지극한 가난과 함께 하면서도 끊임없는 사진에 대한 욕구는 사그라질 줄 모른다.
혼자사는 외로움과 고독이라는 어쩔 수 없는 고통속에서도 스스로 다독이며
하루종일 뭔가에 몰입할 수 있다는 것에 마냥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
이십년이란 짧지않은 세월동안 끼니조차 거르면서도 수도없이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인화하고 보관된 필름을 관리하고 무엇보다 그 작업을 소중하게 여긴다.
하지만 루게릭이라는 불치병으로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더이상 사진을 찍지 못하게 된다.
병마와 싸우면서 끊임없이 일을 놓지 않은 그.
자신의 사진이 그대로 묻히는 것을 두려워한 그는 폐교를 임대해 두모악 갤러리를 만든다.
운동장에는 나무와 억새, 야생초를 심어 작은 정원으로 가꾸고, 제주의 특색에 맞게 돌담을 쌓고
그곳에서 작은 제주의 아름다움을 맛볼 수 있게 만들었다.
그래서일까 그의 사진속에는 제주의 평화와 고요가 있다고 한다.
그 자신도 본인의 사진들을 바라보며 평화와 안식을 얻었다고 한다.
자연과 함께 머물면서 인간 또한 그것의 일부임을 깨닫고 그곳에서 잠들어 영원히 그곳에 머물고 있다.
울적한 날에는 바느질을 한다는 그. 흩어진 천조각들을 한땀 한땀 정성을 들이면서 바느질 하면서
시름을 달랬을 그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죽음을 앞두고 자신이 살아온 그것도 오직 한 길을 걸어온 삶을 뒤돌아보면서 이제 살만해 지니까
불치의 병으로 어쩌지도 못하는 불행이 갑자기 찾아오는 황망함에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제주의 두모악 갤러리에 방문해서 그가 남긴 사진을 통해 그의 흔적을 느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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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혼란스러울 때는 그 가슴 설렘을 기대하며 밤을 새워 바느질을 한다.
순간순간 다가오는 고통을 극복하지 못해 이 길을 포기하고 다른 무엇을 선택한다 해도 그 나름의 고통이 뒤따를 것이다.
불안하고 초조한 마을을 달래야 할 때는 바느질감부터 찾는다. 울적한 날에는 바느질이 최고다.
안개 속에 드러난 억새 그리고 야생화, 나무 ... 모두가 신비롭다. 나는 본능적으로 카메라를 떠올렸다. 정오가 지난 이 시간에는
조용하던 새들의 노래 소리가 요란스럽다. 늘 듣던 풀벌레 소리도 새롭다. 장마찰에 흔히 대하는 안개도 전혀 새롭다.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닌데도 늘 분위기에 압도된다.
매일매일 대하는 집 주변의 눈에 익은 풍경일지라도, 한순간도 똑같은 모습을 보이지 않고 시시때때로 달라진다.
흔히 보는 일상의 풍경이나 사물도 사람의 기분에 따라 느김이 제각각이다. 역시 아름다움이란 주관적인 것일 뿐
객관적인 것일 순 없다.
장마철이면 안개 짙은 날 치자꽃 향기에 취해 마시는 커피 맛은 유별나다. 눈이 소복하게 쌓인 날
보름달을 보며 마시는 차 맛은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나만의 즐거움이다.
눈으로 보아도 보이지 않고, 귀로 들어도 들리지 않고, 잡으려 해도 잡을 수 없는 것. 형상도 없는데
사람을 황홀하게 하는 그 무엇이 중산간 광활한 초원에 존재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최고의 것은, 사람을 황홀하게 하는
그 무엇이다.
해가 솟기 이삼십 분 전의 청잣빛 하늘은 한겨울이 으뜸이다.
사진 속에 표현된 분위기는 사진가의 감정(마음)을 통과한 선택된 분위기다. 사진은 사진가의 감정(마음)을
통과해 해석된 분위기이다.
본다는 행위에도 육감이 동원되어야 한다. 만져보고 느껴보고 들어보고 맡아보고 쳐다보고 난 후 종합적인 감동이어야 한다.
떠나는 사람들은 떠난 뒤에 가끔 섬을 그리워하지만, 섬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단조로운 생활에 사람이 늘 그립다.
작업에 몰입하다 보면 어느새 탄력이 붙는다. 그러다 예상치 못한 순간 한계에 부딪힐 때가 있다.
내가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지 의문이 생긴다. 확신했던 것들이 불확실로 변하면서 마음이 혼란 속에 빠져든다.
한라산, 내 영혼의 고향
날마다 사진을 찍는 나는 날마다 사진만을 생각합니다.
사진 찍는 일에 몰입해 홀로 지내는 동안, 그리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내 존재가 잊혀져갈지라도 나의 사진 작업은 계속될 것입니다.
하늘의 변화에 따라 내 마음은 변화하고 마음의 변화에 따라
어느 한곳을 찾아갑니다. 같은 곳을 수십 번, 수백 번 반복해서
찾아가지만 늘 새로움으로 다가옵니다. 같은 곳을 삼백예순다섯날
하루도 거르지 않고 찾아도 갈 대마다 새롭기만 합니다.
자연은 늘 사람을 설레게 하는 신비로움과 경이로움으로
충만해 있습니다. 나는 늘 긴장 속에서 자연 속을 맴돕니다.
자연에 묻혀 지내는 동안만은 아무리 작은 욕심이라도 버려야 합니다.
나에게 한라산은 온 산이 그대로 명상 센터입니다. 나는 어느 한곳에
머물지 않고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며 사진을 핑계 삼아 명상을 합니다.
수행자처럼 엄숙하게 자연의 소식을 기다립니다. 깊은 생각에 잠겨
내면의 소리에 몰입합니다. 내 마음은 늘 변화했고 그 변화를
필름에 담습니다. 그 시간이 하루 중 제일 소중한 시간이기에
홀로 지내며 그 순간만을 기다립니다. 기다림은 매일매일 반복됩니다.
자연이 전해주는 메시지를 통해 나의 내면도 성장했습니다.
변화를 거듭하는 동안 마음은 중심을 잡았고,
이제는 흔들리지 않는 평화를 얻었습니다.
명상을 계속하는 동안 자연의 소식은 영원으로 이어집니다.
사진에 매달려 세월을 잊고 살다 보니 나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지혜를 얻었습니다. 사진을 계속할 수 있는 한
나는 행복할 것입니다. 살아 있음에 끝없이 감사할 것입니다.
나의 사진 속에는 비틀거리며 흘려보낸 내 젊음의 흔적들이
비늘처럼 붙어 있습니다. 기쁨과 슬픔, 좌절, 방황, 분노....
내 사진은 내 삶과 영혼의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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