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예뻤을 때 - 공선옥
얼마전 공선옥 작가의 '유랑가족'을 읽었을 때 한동안 마음이 먹먹했던 기억을 떠올려본다.
애써 나도 모르게 의식적으로 피해온 작가였는데
이제는 그녀의 책을 스스럼없이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연일까?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불쑥 이 책이 나에게 왔을 때
마치 오래전 친구를 낯선 거리에서 갑자기 만난것처럼 너무 반가웠다.
사실 그녀가 서른에 썼다는 <오지리에 두고 온 서른살>이라던가
마흔에 쓴 <마흔살 고백>을 읽었다면 좀 더 그녀에 대해 자세히 알았겠지만
수박겉핥기 식으로 매번 그녀에 대해 비껴간 무관심이 약간은 죄책감마저 들게 한다.
언제 한번 두권의 책도 꼭 읽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제목에서 '내가 가장 예뻤을 때'가 주는 묘한 뉘앙스에서 내용이 심상치 않음을 감지했다.
특히 80년대의 이십대는 누구나 피비린내 나는 역사의 질곡을 외면할 수 없었는데
이 책 또한 나이 스물이 되는 정말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시대적인 상황과 맞물려 어쩔 수 없이
가장 처참하게 보내야 되는 현실을 그려냈다.
특히, 전라도가 고향인 사람들은 더욱더 기억의 잔재에서 지울수 없으리라.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나이에 친구의 죽음을 옆에서 봐야만 하고, 집을 나와 친구집을 전전하면서
가난이 지극히 당연하게 동반되는 그 상황을 나름대로 합리화시켜보기도 하는,
공장에 취직을 해서 노동운동을 하는 그 어린 스무살들의 우정과, 그리고 치기어린 사랑이,
죽음앞에서 꺼이꺼이 목놓아 울 수밖에 없는 그들의 애처로운 마음들이
한동안 또다시 먹먹하게 만들 것 같다.
책 속에서
'악아, 우지마라, 사는 것은 죄가 아닌게로 우지를 마라'
나는 승희 엄마의 품속에 안겼다. 승희 엄마 옷자락에서 아주 아주 오래 묵은, 엄마 냄새가 났다.
그건, 바로 흙냄새였다. 여름에 소나기가 내리면 마당의 마른 흙에서
뿜어져나오는 냄새, 가을에 고구마를 캘 때면 땅속에서 솟아나는 자우룩한 냄새, 그리고 저녁냄새가 났다.
모든 저녁이면 나는 냄새들.
환한 낮에는 숨어 있다가 어둠이 스며들면 비로소 피어나기 시작하는 냄새들, 뜨물 냄새, 연기 냄새,
수잿물 냄새, 쉰 행주 냄새, 파 마늘 냄새.... 그리고 별냄새, 달냄새, 승희 엄마 품은 한없이 포근했다.
비는 눈물처럼 내리고 있다. 비는 눈물이 된다.
세상에 비가 내리고 내 가슴에 눈물이 흐른다.
온갖 비에 관한 노래를 읊조려봐도 내 마음의 허기를 메울 길은 없다.
비가 내리는 외로운 밤이면 내 방, 나만의 방이 절실히 그리워진다. 태어나서 한 번도 가져보지 않은 그 방이.
빛은 어둠 속에서 나온다는 거, 아름다움은 슬픔에서 나온다는 거,
모든 행복은 고통 뒤에 온다는 거, 진짜 빛이 되고 진짜 아름다움이 있고 진짜 행복이 있다면 말야.
나는 힘차게 달렸다. 내 머리카락과, 내 눈물과 함께 꽃향기 바람에 날리는, 봄밤이 이제 막 열리고 있었다.
'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건지아일랜드 감자껍질 파이클럽 - 메리 앤 세퍼, 애니 배로우즈 (0) | 2009.07.02 |
---|---|
가면의 생 - 에밀 아자르 (0) | 2009.06.28 |
더 리더 - 베른하르트 슐링크 (0) | 2009.06.02 |
부처를 쏴라 - 현각 스님 (0) | 2009.06.01 |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 - 마하트마 간디 (0) | 2009.05.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