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구해달라는 한통의 편지를 보내는 것으로 시작해서
거의 20년 동안 단지 편지만 주고 받으면서
헬렌한프와 프랭크 도엘은
단순한 손님과 가게 점원간의 관계에서 벗어나
우정이 싹트고 결국에는 사랑의 감정까지 생기지 않았나 싶다.
책이라는 공통된 주제를 통하여
수없이 오고간 편지들....
뉴욕의 가난한 작가 와 -그녀의 유머러스한 특이한 문체가 참으로 정감있다.
멀리 대서양너머 전쟁의 후유증으로 빈한한 삶을 사는
영국의 채링크로스 84번가에 있는 오래된 마스크서점 점원.
헬렌은 틈틈히 영국여행을 위해 돈을 모으지만
살던 집의 재건축으로 한없이 미루어야만 하는 상황으로 영국여행을 하지 못하고
결국은 얼굴도 보지 못한 채 프랭크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이별을 한다.
헬렌한프가 서신으로 묶어 책으로 펴낸 것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는데
정작은
독자들로 부터 온 편지에 답신하느라 인세 대부분을 소진했다고 한다.
어려웠던 시절의 풋풋한 정이, 따뜻한 인간미가 느껴졌다.
책속에서
'저는 전 주인이 즐겨 읽던 대목이 이렇게 저절로 펼쳐지는 중고책이 참 좋아요.
해즐릿이 도착한 날 '나는 새 책 읽는 것이 싫다'는 구절이 펼쳐졌고, 저는 그 책을 소유했던 이름 모를
그이를 향해 '동지!' 하고 외쳤답니다.'
'가엾은 프랭크, 제가 그분을 너무 못살게 굴죠. 늘 뭔가 트집을 잡아 가지고 호통을 쳐대니 말이에요.
그저 재미로 조금 놀리는 것 뿐이에요. 그분이 제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분이라는 것은 알지만요. 저는
저 점잖은 영국인의 자제심에 구엄을 내보려고 애쓰는 중이랍니다. 그분한테 궤양이 생긴다면 아마 그건 제가 한짓이겠죠.'
'뉴먼이 도착한 지 일주일이 되어가는 이제야 마음이 진정되네요. 이 책을 하루 종일 탁자 위에 두고 타자를 치다가 한 번씩
만져보곤 해요. 이게 초판이라서가 아니라 이렇게 아름다운 책은 난생 처음 보기 때문이에요. 이걸 제가 소유한다는 사실에
살짝 죄책감마저 들어요. 은은하게 빛나는 가죽과 금박도장과 아름다운 서체는
영국 어느 시골 가정의 소나무 책장에나 어울릴 만한 품격이에요.
이 책은 벽난로 옆에 놓인 가죽 안락 의자에서 읽어야 제격이지 이런 누추한 단칸방의 다 망가진
적갈색 장식벽 앞에 놓인 중고 침대 겸용 소파에서 읽을 것이 아니에요.'
'여러분이 좀 덜 조심하여 카드를 쓰는 대신 속표지에다 글을 남기셨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행여나 책의 가치가 떨어질세라 노심초사하는, 서적상의 본분이 거기서 발휘된 거겠죠?
현재의 소유자에게는 가치를 높이는 일이었을 텐데 말이에요
(그리고 미래의 소유자에게도 그랬을 거예요. 저는 속표지에 남긴 글이나
책장 귀퉁이에 적은 글을 참 좋아해요. 누군가 넘겼던 책장을 넘길 때의 그 동지애가 좋고,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난 누군가의 글은 언제나 제 마음을 사로잡는답니다.)'
'아니, 이런 걸 무슨 페피스의 일기라고 한단 말이죠?
............
얄팍한 1달러 두 장 동봉합니다. 일단은 그냥 갖고 있다가 당신이 진짜 페피스를 찾아주면
이 대용품 책일랑은 한 장 한 장 뜯어서 포장지로나 쓸랍니다.'
'친애하는 초고속 씨-
휴, 아찔하군요. 리 헌트와 불가타 성서를 여기에 이렇게 꽈광 하고 떨어뜨려주시다니....
미처 못 느끼셨을 테지만, 제가 주문을 드린 지 아직 2년도 채 되지 않았다고요.
이런 속도로 계속 가시다 심장마비라도 일으키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나무늘보씨:
당신이 뭐든 읽을 것을 보내주기 전에 여기서 썩어 죽을지도 모르겠어요.
지금 당장 브렌타노 서점으로 달려가 제가
원하는 것이 무어라도 있는지 찾아볼랍니다.'
'하루 종일 뭐하세요? 혹, 서점 뒤켠에 앉아서 독서삼매경에 빠져 계시는지?
누군가한테 책 한 권 팔아보는 건 어때요?'
'저는 봄마다 책을 정리해서 다시 읽지 않을 책들은 못 입는 옷을 버리듯이 내버려요. 모두들 큰 충격을 받지요.'
'프랭키, 당신은 제가 말하기 전까지는 죽을 권리도 없다는 사실, 명심하세요.-'
'그만 자야겠어요. 오늘밤에는 땅바닥에 밑단이 질질 끌리는 학자의 예복을 입은
거대한 괴물들이 발췌, 선집, 구절, 축소본따위의
꼬리표가 붙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푸줏간 칼을 들고 설치는 악몽에 시달릴거예요.'
'다시 편지를 받고 반가웠습니다. 네, 우린 아직 여기 있습니다. 갈수록 나이가 들고 바바지지만 더 부자가 되지는 않는군요.'
'혹 채링크로스가 84번지를 지나가게 되거든, 내 대신 입맞춤을 보내주겠어요? 제가 정말 큰 신세를 졌답니다.'
'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지막 강의 - 랜디포시 (0) | 2009.05.05 |
---|---|
내 마음의 무늬 - 오정희 (0) | 2009.05.02 |
아나스타시아 - 블라지미르 메그레 (0) | 2009.04.19 |
바다의 기별 - 김 훈 (0) | 2009.04.12 |
밤의 클라라 - 카트린 로캉드로 (0) | 2009.04.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