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 순간까지
펜을 놓지 않고 남긴 시들을
그 분의 따님이 묶어 책으로 내놓았다고 한다.
마치 수필같은 시로
그분의 지나간 일기를 보는 듯했다.
출생에서부터 어린시절의 삶과 어머니와
할머니에 대한 추억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다시 태어나면 무엇이 되고 싶으냐는 물음에
일 잘하는 사내를 만나 깊은
산골에서 농사짓고 살고 싶다는 대답에
그것은 순리에 대한 그리움이라고.
잠이 안오는 밤에 바느질이나
뜨개질을 했다고 한다.
그것들이 한 땀 한 땀 글줄로 남았다고..
어쩌다가 글 쓰는 세계로 들어가
고도와 암실과도 같은 그 공간이
그분의 길이, 스승이, 친구가 되어 지켜 주었다고...
책 속에 그려진 작가에 대한 그림도
정겹게 느껴졌다.
'옛날의 그 집'
빗자루병에 걸린 대추나무 수십 그루가
어느 날 일시에 죽어 자빠진 그 집
십오 년을 살았다
빈 창고같이 휭덩그레한 큰 집에
밤이 오면 소쩍새와 쑥꾹새가 울었고
연못의 맹꽁이는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던
이른 봄
그 집에서 나는 혼자 살았다
다행이 뜰은 넓어서
배추 심고 고추 심고 상추 심고 파 심고
고양이들과 함께
정붙이고 살았다
달빛이 스며드는 차거운 밤에는
이 세상 끝의 끝으로 온 것 같이
무섭기도 했지만
책상 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
나를 지탱해 주었고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
그 세월, 옛날의 그 집
나를 지켜 주는 것은
오로지 적막뿐이었다
그랬지 그랬었지
대문 밖에서는
늘
짐승들이 으르렁거렸다
늑대도 있었고 여우도 있었고
까치독사 하이에나도 있었지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 '사람의 됨됨이' 중
나는 인색함으로 하여
메마르고 보잘것없는
인생을 더러 보아 왔다
심성이 후하여
넉넉하고 생기에 찬
인생도 더러 보아 왔다
인색함은 검약이 아니다
후함은 낭비가 아니다
인색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위해 낭비하지만
인색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위해 낭비하지만
후한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는 준열하게 검약한다.
사람 됨됨이에 따라
사는 세상도 달라진다
후한 사람은 늘 성취감을 맛보지만
인색한 사람은 먹어도 늘 배가 고프다
천국과 지옥의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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