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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쉬러 나가다 - 조지 오웰

이사벨라아나 2014. 10. 17. 18:54

 

 

이 책은 조지 오웰이 '동물농장'이 나오기 전에 씌여진 소설인데 발표직후

세계 제2차 대전 발발로 묻히다시피 했다고 한다.

틀니를 하고 다소 뚱뚱한 보잘것 없는 외모를 가진 보험 외판원인 중년 남자 주인공인 조지 볼링.

가장 평균적인 중년남자의 입장에서 매우 암울한 현실에서 단 며칠만이라도 탈출하고 싶어

아내 힐다를 속이고 혼자만의 휴가를 즐기고자

옛 시절을 보냈던 고향으로 가지만 어릴 때의 '고향'은 공업단지로 변하고

심지어 뚱뚱한 중년부인으로 변해 자신을 알아보지도 못하는 옛연인 엘시를 만나면서

자신이 꿈꾸었던 호젓한 낚시는 커녕 피폐하게 모든 것이 바뀐 끔찍한 현실에 

더군다나 우연히 듣게되는 라디오 sos방송에서 아내 힐다의 위독함을 듣고

아무미련없이 그곳을 떠나 다시 감옥같은 집으로 되돌아오면서

전보다 더 안좋은 상황으로 되어 버린다는 결말이 다소 허무하게 끝나버리는 이야기인데

주인공이 화자가 되어 나열하는 듯 써내려가는 구성이 약간 건조하게 다가와

다소 지루한 면이 없지 않았지만,

전체적으로  조지 오웰의 간결하면서도 덤덤한 문체로 

전쟁 발발전의 영국 런던의 분위기를 잘 드러나게 씌어진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책 속에서

 

과거는 참 묘한 것이다. 과거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 있다. 나는 우리가 10년이나 20년 전에 일어났던 일들을 떠올리지 않으면서 지나가는 때가 한 시간이라도 있겠나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 과거는 실체를 따지지 않는다. 역사책에 나오는 많은 사건들처럼 우리가 알게 된 사실들의 조합일 뿐이다. 그러다 어떤 우연한 광경이나 소리나 냄새, 특히 냄새가 우리를 자극하게 되는데, 그럴 때는 과거나 우리에게 다가오는 정도가 아니라 우리가 사실상 과거 '속'에 들어가 있게 되는 것이다. 그 순간이 바로 그랬다. - 46

 

어떤 일에 정통한 사람이 그 일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언제나 매혹적이다. 여인이(물론 요리를 정말 할 줄 아는 여인을 말한다)

반죽 미는 모습을 지켜보라. 그녀의 독특하고 진지하고 성찰적이고 확신에 찬 몸가짐은 신성한 의식을 거행하는 여사제 같다. 물론 마음가짐고 정확히 그러하다. 어머니는 팔뚝이 굵고 붉고 억센 분이었는데, 거기에는 거의 항상 반죽이 얼룩덜룩 묻어 있었다. 음식 장만하는 어머니는 몸동작 하나하나가 놀랍도록 정교하고 확실했다. 어머니 손에 들린 계란 젓개나 고기 저미개나 반죽 밀대는 목적을 정확히 수행했다. 요리하는 어머니를 보면, 어머니가 자신이 속하는 세상, 즉 자신이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것들 속에 있음을 알 수 있었다. - 74

 

나는 전쟁으로 손해보다는 이익을 더 많이 봤다고 해야 할 것이다. 아무튼 한 해 남짓 마음껏 소설을 읽던 그 기간 동안 나는 책 공부라는 의미에서는 유일한 진짜 교육을 받았던 것이다. 그것은 내게 확실한 무언가를 길러주었다. 그것은 말하자면 미심쩍어할 줄 아는 태도를 갖게 해주었는데, 정상적인 생활을 했더라면 아마 갖지 못했을 태도였다. 그런데 나를 정말 바꿔버린 것은(이해하실지 모르지만), 내게 정말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내가 읽은 책보다는 내가 하던 생활의 지독한 무의미함이었다. - 176

 

나는 가속 페달을 힘껏 밟았다. 로어빈필드에 다시 가본다는 생각만으로도 벌써 힘이 난 것이었다. 어떤 느낌인지 아실 것이다. 숨 쉬러 나간다는 것! 커다란 바다거북이 열심히 사지를 저어 수면으로 올라가 코를 쑥 내밀고 숨을 한껏 들이마신 다음, 해초와 문어들이 있는 물밑으로 다시 내려오듯 말이다. 우리는 모두 쓰레기통 밑바닥에서 질실할 듯 지내고 있는데, 나는 밖으로 나갈 길을 찾은 것이었다.- 241

 

차를 몰고 언덕을 내려오며 생각한 것 하나, 이제 과거로 돌아가본다는 생각일랑은 끝이다. 소년시절 추억의 장소에 다시 가본들 무슨소용이란 말인가? 그런 건 존재하지도 않는다. 숨 쉬러 나가다니! 숨쉴 공기가 없는데, 우리가 살고 있는 쓰레기통 세상의 오염은 성충권에까지 도달해 있다. 아무렴 어떤가, 나는 특별히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아무튼 내겐 사흘이 더 남아 있었던 것이다. 나는 약간의 평화와 정적을 누릴 것이며, 로어빈필드가 어떻게 되어버렸니 하는 것에 연연하지 않기로 했다. 낚시를 하러 간다는 생각 - 그거야 물론 없던 일이 되어 버렸다. 아니, 낚시라니! 내 나이에! 힐다 말이 정말 맞았다. - 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