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추천해준 이 책을 이제야 읽었다.
작가가 화자가 되어 적나라하면서도 과감한 표현들이 쿡 웃음을 짓게 하면서도
등장인물들의 너무나 어이없이 쉽게 죽는 것과 새로운 탄생으로 이어지면서 여인들의 기구하고
파란만장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운명이 이끄는 딜레마를 보여주는 듯
지극히 이채로운 삶을 통해서
현실과 허구가 공존하면서 또다른 세계가 예측불허로 돌발적으로 펼쳐지는 것이
마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을 불쑥 떠올리게 만들었다.
복잡하면서도 그럴싸한 황당무개한 스토리로 거침없이 끌어당겨 꼼짝없이 책 속으로 들어가게 만들었다.
독자들을 마치 손으로 쥐락 펴락 가지고 노는 듯이 자신의 세계로 유혹하면서 주물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낯설면서도 그렇지 않은 세계에 들어갔다가 나온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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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서
인생을 살아간다는 건 끊임없이 쌓이는 먼지를 닦아내는 일이야 - 10 -
바다 한복판에서 갑자기 집채만한 물고기가 솟아오른 것이었다. 부두에 처음 도착한 날
목격했던 바로 그 대왕고래였다.
몸길이만도 이십여 장(丈)에 가까운 고래는 등에 붙어 있는 숨구명으로 힘차게 물을 뿜어냈다.
그녀의 배한복판에서 뭔가 뜨거운 것이 치밀어올랐다.
그것은 죽음을 이겨낸 거대한 생명체가 주는 원초적 감동이었다. -65 -
혀끝에 퍼지며 깔끔한 여운을 남기고 사라지는 쌉싸래한 맛, 고아한 비밀을 간직한 듯한
새금한 향기는 오래 전 그녀가 고향 언덕에 앉아 있을 때, 남쪽에서 불어오던 바람의
냄새를 생각나게 했다. - 103 -
개망초.
그것은 춘희가 금복의 손을 잡고 평대에 처음 도착했을 때 역 주변에 무성하게 피어 있던,
슬픈 듯 날렵하고, 처연한 듯 소박한 꽃의 이름이었다. - 150 -
무모한 열정과 정념, 어리석은 미혹과 무지, 믿기지 않는 행운과 오해,
끔찍한 살인과 유랑, 비천한 욕망과 증오, 기이한 변신과 모순, 숨가쁘게 굴곡졌던 영욕과 성쇠는
스크린이 불에 타 없어지는 순간,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함과 아이러니로 가득 찬,
그 혹은 그녀의 거대한 삶과 함께 비눗방울처럼 삽시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 301 -
춘희는 자신의 인생을 둘러싼 비극을 얼마나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을까? 그녀의 육체는 영원히 벗어던질 수 없는
천형의 유니폼처럼 단지 고통의 뿌리에 지나지 않았을까? 그 거대한 육체 안에 갇힌 그녀의 영혼은 어떤 것이었을까? - 3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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