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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어 - 김경주

이사벨라아나 2012. 3. 10. 22:36

 

갈수록 새로운 형식의 책에서 놀라움과 감탄을 금치 못한다.

파스칼 키냐르의 '매혹은 언어의 사각지대에 대한 인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선은 언제나 곁눈질이다' 라는 인용구가 간단하게 말해주는 것처럼

우리 몸 즉 신체의 곳곳을 시적으로 마치 몽환적으로 표현해내는

그의 언어에 은밀함과 더불어 자유분방한 그의 사고를 접할 수 있었다.

밀어란 보이지 않는 언어로 떠나보는 여행이라는데

여자의 누드는 얼마나  더 신비스럽고 생경스러울 수가 있을까?

신체 각 부위에 따라서 거침없이 비유해내는 시인의 대담한 시도가 엿보인다.

이미지와 더불어 떠오르는 감각적인 문체가 아직도 귓가에 맴도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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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서

 

한 계절이 한 계절을 밀어낼 때 몸속의 소음은 나른하고 따스한 누란이 되기도 한다. - 27

 

저녁에 외로워지는 눈망울은 내 삶은 공전하고 있는 사람에게만 보여주는 천문대이다.

미끄러져 나오는 밀물은 내가 가장 사유로부터 물러나고 싶은 시간이다. - 66

 

눈을 감고 연주를 하는 연주자와 눈을 감고 연주를 듣는 청중사이에는 불가해한 침묵만이 흐른다.

그것은 음향으로 이루어진 침묵이다. - 75

 

나비의 육체는 곧 숨이다. 나비는 폐에 어떤 내용으로도 기록된 적이 없는 숨결의 궁도를 가진채 현존에 내려앉는다.

나뭇잎 위에, 이슬방울 위에, 한 편의 소네트에, 어떤 울림의 증언 위에. - 89

 

내 시를 읽을 때 너의 숨 속에서 나의 나비가 태어나려 한다 -90

 

시는 해설이 아니라 해독이다. - 91

 

목선은 상실된 어제를 상기한다.

목선은 상실에 다가가려는 몽상의 편력들이다. 목선은 그 상실에 다시 다가가려는 자들이 손에 쥐고 있는 금빛 풍뎅이들이다. - 100

 

가냘픔을 숨기기 좋은 날,

보조개처럼 피어 있는 문장이 있고

누군가의 보조개를 몰래 수첩에 그려보고 잠든 날이 있다. - 124

 

가슴골은 분꽃처럼 저녁이면 희미하게 육체에서 피는 분홍이다.

그 분홍의 궤적을 문장으로 옮기면

분꽃의 꽃말은 '사랑을 의심하다'이다. -139

 

외로움이, 존재를 누구보다 진하게 느끼고 있을 때 태어나는 우리 몸의 동요라면,

공포는 자신의 존재 자체도 잊게 되는, 낯선 영역의 동화에 가깝다. 

동화는 이야기를 다르게 상상하도록 만들지만 동요는 이야기를 숨기는 상상력이다. -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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