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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들 - 윌리 로니스

이사벨라아나 2011. 12. 8. 21:04

 

 

우연히 내 손에 들어온 책.

사진작가가 사진을 찍으면서 그 사진속이야기와 더불어 과정들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1947년부터 1990년까지의 결코 짧지 않은 기간에 걸쳐 찍은 사진들에서

흑백 사진이지만 그 옛날풍경과 그 속에 있는 사람들은

마치 사진속에 나타난 자연들과  한점의 점으로 어우러져 녹아있는 듯하다.

표정들이 지극히 꾸미지 않은 편안한 모습 그대로여서

연출하지 않은 사진들이 갖는 특징들이 느껴졌다.

작가 스스로도 본인의 사진을 '감정과 정동(情動)의 사진'이라고

마치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가 찍은 것 같다고 한다.

휴머니즘을 찍는 것이 아닌 VIf(날것, 날렵한 것, 발랄한 것, 경쾌한 것, 격렬한 것, 매서운 것, 쓰라린것,

흥분되는 것, 자연스럽고 우연한 것이되 강렬한 것) 즉 빈둥거리듯 우연히 찍는 듯한 사진이

사실은 단순한 것이 아닌 회화처럼 적절하고 정확하게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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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서

내가 사진을 찍는 그때 그 순간을 정의하기는 무척 어렵다.

그것은 매우 복합적이다.

가끔은 은혜롭게도 사물이 내게 주어진다. 나는 그것을 '정확한 순간'이라 부른다.

내가 일부러 기다린다면, 그것은 나타나지 않거나 도망친다. 나는 이런 순간의 정확성이 좋다. - 8

 

가끔은 괜히 사진을 찍어 그 순간을 죽이는 것은 아닐까 두려울 정도로 강렬한 순간이 있다.

내가 의심이 들 때는 바로 그런 순간이다. 나 혼자 이야기를 지어내는 것은 아닐까.

그때 그 느낌을 나의 동료들과 과연 온전히 나눌 수 있을까. 그럴 때는 매우 신중해진다. 일정한 거리를 취한다.

이미지가 종이 위에 인쇄되면, 내가 그때 느꼈던 마법이 아직도 살아 있나? 만져지나? 하고 본다. 가끔은 그런 게 거의 남아있지 않은 경우도 있다.

그럴 땐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지 않고 나 자신만을 위해, 나만의 기억처럼 그 사진을 간직한다. - 19

 

보통, 나는 일어나는 것은 아무것도 바꾸지 않는다. 그저 바라보고, 기다린다.

어떤 사진이든 그냥 그 상황의 인상에 따른다.

내 순간성을 잡을 수 있는 좋은 위치만 찾으려고 애쓸 뿐이다.

실재가 더 생생한 진실 속에 드러나도록 그것은 시점의 쾌락이다.

때론 고통이기도 하다. 일어나지 않은 것을,

혹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어날 일을 바라는 것이기 때문에. - 30

 

나는 이렇게 짧고, 우연한 순간을 잡는 것이 좋다. 그럴 땐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지만

뭔가 일어난 것 같은 인상을 받는다. 그 뭔가가 내 마음을 흔들어놓는다.

그걸 생각하면 지금도 목이 멘다. 하지만 내 감정 때문에 조금의 오해라도 생기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 50

 

사실, 내 사진 인생을 통틀어 내가 가장 붙잡고 싶은 것은 완전히 우연한 순간들이다. 그 순간들은 내가 할 줄 아는 것보다

더 훌륭하게 나에게 이야기해줄 줄 안다. 내 시선을, 내 감성을 표현해주는 것이다. 사진마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은 것 같은데

뭔가 일어나고 있다. - 91

 

내가 포착하는 것은 대개 불안정한 순간들이지만, 그 내부에서

덧없을지라도 또 다른 균형점을 찾으려고 한다.

그 찰나성을 잡을 수만 있다면, 그건 정말 커다란 보상이다. - 160

 

윌리 로니스의 원칙은 이것이다.

"나는 삶에 움직인다.

나는 사람들을 좋아하고, 사람들이 거니는 거리를 좋아한다.

나는 나를 숨기지 않지만,

또 아무도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다."

 

대서특필될 만한 특종성 따윈 없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장면, 아마추어가 찍었을 법한 아주

단순한 장면, 잘난 척하지 않는 착한 사진, 진심이 담긴 사진,

윌리 로니스의 사진이 주는 감동은 작지만 은근하게 퍼지는 햇살 같은 감동이다. - 옮긴이의 글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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