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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는 나무 - 미치오 호시노

이사벨라아나 2011. 7. 19. 20:56

 

 

 

젊은 날 알래스카를 동경하며 꿈꾸어 오던 것을 과감하게 실행해 옮긴 일본인 사진작가 호시노 미치오.

20여년간 그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면서

알래스카의 경이로운 신비의 대자연이 펼쳐지는 풍경에 매료되어

낯선곳에서의 삶에 서서히 동화되어 가면서

사진을 통하여 그 곳의 세계를 다양하게 표출함으로써

자신만의 진정한 의미의 인생을 살고저 노력하지 않았나 생각되었다.

 

제목인 여행하는 나무는 알래스카 원자력 발전저지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친 

빌 플레이트가 쓴 책인 '북극의 동물들'에서 나오는 제 1장의 제목이기도 하다.  

알래스카의 자연을 마치 소소하게 이야기하듯 쓴 명작으로 저자가 보물처럼 간직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 속에서 등피나무에 앉아 씨앗을 먹는 잣새가 떨구는 씨앗으로부터 다시 나무는 성장하고

오랜세월동안 자연의 변화에 따라 북쪽 툰드라지대까지 떠내려갔다가 다시 우여곡절끝에 알래스카를 떠돌면서

여행을 한다는 이야기이다.

 

열여섯살에 떠나게 된 미국여행에서 소중한 경험들로 자신의 내적 성장을 자연스럽게 느끼고

열아홉에 우연히 방문했던 알래스카를 이십대 초반에 가장 절친했던 친구의 죽음을 계기로

익숙하고 낯익은 세계가 갑자기 낯설음으로 다가왔을 때....

사진을 하면서 다시 가게 된 알래스카.

친구의 죽음으로부터 시간의 존재를 느껴 시간에 구속받지 않는 대자연 속에서

무한한 생명을 체감하고 싶어서 그곳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고 한다.

 

과학이라는 미명하에 파괴되어버리는 원시적인 자연을 지키고자 다가오는 문명에 저항하며

자연원주민과 이주민의 끝없는 갈등속에서

모든 존재가 늘 같은 장소에 멈춰있지 않다는 진리를 깨달으면서

알래스카라는 아직은 원시적인 모습이 많이 남아있는

웅장하고 거대한 대 자연속에 머물면서 그곳에 얽혀있는

자연과 동물 그리고 인간들의 꾸밈없는 이야기가 담겨 있어

마치 책 속에서 알래스카에 있는 듯한 생생한 느낌을 들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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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서

신록의 절정이 딱 하루인 것처럼 단풍의 절정도 이곳에서는 불과 하루뿐입니다. 벌판을 수놓은 가을빛은 나날이 짙어만 가고,

여러가지 식물들이 만들어내는 툰드라의 모자이크는 말할 수 없이 아름답습니다. -34

 

우리가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것은 그저 당연한 일상이 아니라 기적입니다.

오늘 나의 심장이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움직였다는 것 자체가 기적입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은 기적 중에서도 가장 큰 기적입니다. -46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이기에 아직도 그런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장소와 마주치는 순간,

오히려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 방황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일수록 나 자신을 비우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이 세계가 전에 살던 세계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두려워 할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가 이 새로운 세계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 51

 

낡은 소파와 여기저기 산더미처럼 쌓인 책,

그리고 바닥에 누워있는 늙은 개......

이 책방의 가장 큰 매력은 현실과 동떨어진 낯설음이었다.

어쩌면 이런 낯설음이야말로 사람들이 그토록 애타게 찾는 정신의 위로가 아닐까 -117

 

무수히 많은 별들이 알래스카의 밤을 밝히고 있다.

영원할 것만 같은 우주의 침묵, 이것이 알래스카의 밤이다.

왜 유독 알래스카에서만 오리온자리가 이렇듯 크게 보일까. -147

 

이곳엔 문명이 없다. 대신 우주의 진정한 모습이 숨어 있다.

빙하 위에서 보내는 고요한 밤, 차가운 바람, 반짝이는 별빛.....

정보가 적다는 사실은 사람의 내부에서 어떤 힘을 만들게끔 유도한다.

그래서 그만큼 인간은 더 많은 무언가를 상상하게 된다. -153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바로 이 순간에도 또 하나의 시간이 아주 천천히 흐르고 있다.

하루하루 반복되는 일상에서 또 하나의 시간을 마음 한구석에 간직하고 살아가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에는 너무나도 큰 차이가 있다. 마치 하늘과 땅이 서로의 차이를 좁힐 수 없는 것처럼. -161

 

인간의 삶은 타인의 희생을 필요로 한다. 타인은 내 이웃이 될 수도 있고 자연이 될 수도 있다.

한 생명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생명이 사라져야 한다. 이것은 자연의 숙명이다.

인간도 이 같은 숙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모습이 약간 다를 뿐이지 문명사회를 지탱하는 힘 역시 약자의 희생이다.

어떤 면에서는 알래스카의 대지보다 더 춥고, 살벌한 곳이 현대사회일지도 모른다. - 244

 

오늘은 곰의 피를 마셨지만, 내일은 곰이 나의 피를 마실 수도 있다. 살아남기 위해 내가 한 생명을 희생시켰듯이

자연은 나를 희생시켜 다른 생명을 살릴 권리가 있다 - 245

 

친구의 죽음을 목격한 후 시간의 존재가 내 삶에서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무한하지 않다는 그 절박함은 깨닫지 못한 사람에겐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다. -259

 

볼을 스치는 북극 바람의 감촉, 여름철 툰드라에서 풍기는 달콤한 냄새,

백야의 엷은 빛, 못 보고 지나칠 뻔한 작은 물망초......

문득 걸음을 멈추고 그 풍경에 마음을 조금 얹어서 오감의 기억 속에 남겨놓고 싶다.

아무것도 낳지 않은 채 그냥 흘러가는 시간을 소중하게 누리고 싶다. - 299

 

** 모든 생명은 바로 이 순간에도 여행을 계속하고 있다. 별도 예외일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