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란쿤데라의 '느림'은
화자인 나와 아내가 프랑스 여행중 어느 호텔에 묵게 되면서 곤충학회에 참석한 사람들을 구경하게 된다.
소설 처음에는 18세기 낭만주의 소설 '내일은 없다'라는 소설에서 T부인과 그의 정부 그리고 기사의 이야기가 나오고
중간에 20세기 사람들의 이야기인 곤충학회 참석차 들른 호텔의 또다른 사람들, 퐁트벵과 벵상, 베르크의 속물적인 이야기로 섞이다가
마지막에 18세기와 20세기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다시 '내일은 없다'에 등장하는 T부인과 기사의 이야기의 기사와 벵상과의 대화가 벵상의 아주 기묘한 믿을 수 없는 하룻밤을 보냈다는 말에
기사는 그날밤 T부인과의 기막히게 아름다운 밤을 보냈다는 상반된 결과를 말하게 되고...
그러면서 화자는 경멸의 시선을 받고 기분잡친 하룻밤을 빨리 잊어버리려고
속도에 대한 채울 수 없는 갈증을 느끼며 그것을 지워버리려고 오토바이에 강렬한 욕구를 느끼며
서둘러 오토바이에 올라타는 벵상과 반면 기사는 마차 쪽으로 천천히 하룻밤의 행복했던 시간들을 기억하기 위해서
느려진 그 기사의 걸음걸이에서 행복한 징표를 엿본다.
세가지의 인물들이 시대적 분위기를 넘나들며 스토리속에 들어가 소설 속에 섞이는 자체가 어떤 미묘한 조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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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서
두려움의 원천은 미래에 있고, 미래로부터 해방된 자는 아무것도 겁날 게 없는 까닭이다. - 6 -
인간이 기계에 속도의 능력을 위임하고 나자 모든 게 변한다. 이때부터, 그의 고유한 육체는 관심 밖에 있게 되고
그는 비신체적, 비물질적 속도, 순수한 속도, 속도 그 자체, 속도 엑스터시에 몰입한다. - 7 -
느림과 기억 사이, 빠름과 망각 사이에는 어떤 내밀한 관계가 있다.
느림의 정도는 기억의 강도에 정비례하고, 빠름의 정도는 망각의 강도에 정비례한다. - 48 -
우리 모두는 저마다 너무나 평범한 삶의 저열함을(다소간) 괴로워하며 이로부터 벗어나 스스로를 고양시키고자 한다.
우리 모두가 제각기 그 같은 고양에 합당하다는, 이를 위해 선택되었고 예정되었다는(다소 강렬한) 환상을 경험했다. - 60 -
모든 몸짓은, 그들의 실제 기능을 넘어서, 그것들을 행하는 사람의 의도를 초월하는 어떤 의미를 갖는다.
수영복을 입은 사람이 물에 뛰어들 때는, 그 잠수자가 슬픔에 잠겨 있다 할지라도 이 몸짓에서 드러나는 것은 기쁨 그 자체이다.
누가 옷을 입은 채 물에 뛰어든다면, 이는 얘기가 전혀 다르다. 익사하려는 자만이 옷을 모두 입은 채 물에 뛰어든다. - 148 -
속도는 망각의 강도에 정비례한다는 것. 이 방정식에서 우리는 여러 필연적 귀결들을 연약할 수 있는데,
예를 들면 이런 것 - 우리 시대는 속도의 악마에 탐닉하고 있으며 그래서 너무 쉽게 자신을 망각한다.
한데 나는 이 주장을 뒤집어 오히려 이렇게 말하고 싶다.
우리 시대는 망각의 욕망에 사로잡혀 있으며 이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속도의 악마에 탐닉하는 것이라고 - 1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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