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의 '네가 ~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에서 소개된 책.
작가는 이 책을 딸에게 소개하면서 행복한 사람만이 진정으로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 말의 의미를 이 책을 읽으면서 절감했다.
크기도 작고 두께도 얇아 가볍게 읽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집어든 책이었는데
의외로 약간은 무겁게 다가왔다.
24년간 쌍둥이처럼 붙어다닌 친구 콘라드가 어느날 사냥에서 자신을 죽이려 했고 나아가서는 그의 아내 크리스티나와의
불륜 관계었음을 알게 되면서 헨릭은 제일 친한 두사람에게서 기만당했다는 사실을 안다.
그 후 세사람의 삶은 뿔뿔히 흩어지면서 그들의 삶자체도 파괴되어 버린다.
콘라드는 열대로 떠나 버리고 크리스티나는 떨어져 지내면서 8년 후 자살이라는 죽음을 선택한다.
장군 헨릭은 기다림만이 진정한 복수라고 생각하며 친구를 기다린다.
75세가 되었을 때, 그들과 헤어진 지 41년 만에 콘라드의 방문으로 재회하는데
단지 하룻밤 동안의 그와의 대화는 시종 헨릭의 독백으로 이어지면서
과거 어린시절의 친구관계와 그의 자신에 대한 환경의 차이에서 오는 증오심에 대해서,
아내 크리스티나와의 관계에 대해서 그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해서 심도있게 파헤친다.
인간은 두종류의 부류가 있다고 한다.
아버지와 주인공 헨릭이 한부류라면 어머니와 콘라드 그리고 헨릭의 아내 크리스티나가 다른 부류의
사람이라고 구분짓는 이야기가 책 초반에 나오면서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느껴졌다.
인간의 본능과 본성에서 나오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 만들어 내는 비극.
두사람의 배신으로 인해 41년간 철저한 고독으로 칩거하면서 특별한 공간에 길들여진 병자처럼 분노와 절망을 삭인 그의 삶.
두가지 궁금증에 대한 물음(자신을 정말 죽이려고 했는지와 아내와의 관계에 대하여)을 제기하지만 이미 답은 안다고 하면서
지금 이순간만을 기다려 왔다고 얘기한다.
콘라드가 떠나버린 후
그제야 떼어내었던 아내 크리스티나의 초상화를 다시 걸고 그동안 지었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다.
헝가리 출신 작가 산도르 마라이는 41년간 망명생활을 하며 마지막 89의 나이에 권총으로 자살했다.
그의 일지에는 '지나치게 오래 사는 것은 분별없는 짓이다'라고 씌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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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서
아흔 살이 지나면, 오십대나 육십대와는 다르게 늙는다. 서글픔이나 원망 없이 늙는다. - 17
최초의 놀라움이 지난 지금, 갑자기 피곤이 엄습했다. 일생 동안 준비를 하는 것이 있다. 처음에는 당황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복수를 계획한다.
그리고 기다린다. 그는 오랫동안 기다려왔다. 당황이 언제 복수심과 기다림으로 바뀌었는지 그 자신도 알지 못했다. - 23
고독이라는 것도 참 묘하네. 그것도 정글처럼 이따금 위험과 놀람에 가득 차 있어. 나는 온갖 고독을 알고 있네. 삶의 질서를 아무리 엄격하게
좇아도 헤어날 길 없는 권태. 그 뒤를 잇는 갑작스러운 폭발. 고독도 정글처럼 불가사의 하다네 - 133
현재의 자기와는 달라지고 싶은 동경, 그것보다 더 고통스럽게 인간의 심장을 불태우는 동경은 없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과 세상에서 차지하는 것하고 타협할 때에만 삶을 견딜 수 있기 때문일세. -172
기다림이 지나가고 복수의 순간이 온 지금,
놀랍게도 나는 우리가 서로에게 알아내고 고백하거나 부인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얼마나 절망적이고 무가치한가를 느끼네.
사람은 오로지 실제 현실만을 붙잡을 수 있어. 지금 나는 그것을 붙잡네. 시간의 속죄과정이 분노의기억을 정화시켰지.-250
누군가를 죽일 수 있을 정도로 사랑하고 목숨을 바칠 만큼 가까운 사람보다 더 오래 산다는 것은 뭐라 이름붙일 수 없는 은밀한 범죄이네. - 271
어느 날 우리의 심장, 영혼, 육신으로 뚫고 들어와서 꺼질 줄 모르고 영원히 불타오르는 정열에 우리 삶의 의미가 있다고 자네도 생각하나?
무슨 일이 일어날지라도? 그것을 체험했다면 우리는 헛산 것이 아니겠지? 정열은 그렇게 심오하고 잔인하고 웅장하고 비인간적인가?
그것은 사람이 아닌 그리움을 향해서만도 불타오를 수 있을까? -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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