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서만필에 소개된 책중의 한 권.
우연히 눈에 띄어 빌리게 되었는데 지난 일요일에 접해서일까?
산책을 하고 난 뒤에 집어든 책에서 작가가 마치 일요일같이 뜻밖에 얻은
평일의 하루 휴가를 북한산에 혼자 오르면서 황홀하고 몽롱한 느낌을 적은 부분에서
나또한 비슷한 경험을 한 터라 더 가까이 다가서는 느낌이 들었다.
미술에 대해서, 음악에 대해서 그리고 문학에 대해서
짧은 글들을 기고한 것들을 모은 스물여섯가지 이야기들이 실려있다.
첫장을 펼치면 '호퍼, <철학으로의 이탈>'이란 제목이 있는데
그림에 대한 설명으로 낯선 풍경과 상황으로 멍하니 앉아있는 남자의 모습에서
철학과 이성은 결코 행복의 언어가 아니라고 한다.
음악가 굴렌굴드를 <굴렌 굴드, 피아노 솔로>라는 책을 읽고서야 그의 음악을 좋아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 가에 대한 답의 의미로 얀 마텔의 <파이 이야기> 등.
그 중에서 내가 가장 인상깊게 읽었던 내용은 영화 <로켓 지브랄타>에 관한 이야기다.
말년의 삶을 롱아일랜드 바닷가 집에서 혼자 사는 레비 록웰.
자신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가족들과의 만남에서
손자들에게 바이킹족의 장례식에 대해서 얘기를 해 주는데
손자들은 할아버지의 생신 선물로 바닷가에 버려진 배 한척을 수리해서 장례식에 쓰려고 준비하는데
우연의 일치인지 그 생일날 죽음을 맞게 된다.
아이들은 황혼이 진 바다위에 할아버지의 시신을 실은 배를 띄워 불화살을 날려 그 배를 태우는 바이킹식 장례식을 치른다.
물질적으로 넉넉함에서 오는 여유.
비록 과거의 크고 작은 슬픈 일들이 많았지만 서로 포용해줌으로써
자연적 문화적 넉넉함이 단순한 풍요로움이나 행복의 충족과는 달리
물질적 정신적 문화적 품위가 어우러진 곳에서 나온다는 이야기다.
아름다운 가족이야기.
삶의 아픔과 굴곡이 뒤엉켜 있지만 그것은 오히려 아름다운 무늬로 남게 되는
품위있는 완벽한 삶이라고 감히 말하고 있다.
버트 랑카스타와 맥컬리 컬린이 주연으로 나온다고 하는데 기회가 되면 꼭 보고 싶다.
편하게 읽은 책이다.
==================================================================================================
책 속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은 무위의 시간이었지만, 나의 모든 감각과 사유와 내면은
활발하게 움직인 바쁜 하루였다.
아마도 감각과 사유와 내면에도 피부라는 것이 있다면,
그 피부는 열탕에서 갓 나온 것처럼 발갛게 상기되었을 것이다.
숲에서 보낸 나의 하루와는 무관하게 세상의 하루도 저 어둑한 산등성이를 넘어간다.
나는 오늘 하루, 세상이라는 답답한 미궁의 어느 모퉁이에 나만 아는 조그만 환기구멍을 하나 만들었던 것 같다.
엘리어트의 유명한 장시 '황무지' 제5부에 나오는 구절.
- 나는 언젠가 문에서
열쇠가 돌아가는 소리를 들었다. 단 한 번 돌아가는 소리.
각자 자기 감방에서 우리는 그 열쇠를 생각한다.
열쇠를 생각하며 각자 감옥을 확인한다.
'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도 섬길 여행 - 유혜준 (0) | 2010.08.14 |
---|---|
순수 박물관 1 - 오르한 파묵 (0) | 2010.08.02 |
외면일기 - 미셸 투르니에 (0) | 2010.07.23 |
짧은 글 긴 침묵 - 미셸 투르니에 (0) | 2010.07.17 |
취서만필 - 장석주 (0) | 2010.07.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