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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 긴 침묵 - 미셸 투르니에

이사벨라아나 2010. 7. 17. 00:03

천둥과 번개가 번쩍하고 치더니 세찬 빗소리가 들리는 밤의 공기가 제법 시원스럽게 느껴진다.

잠깐 정전이 되어 밖을 내다보니 칠흑같은 어둠 속에

고요를 깨뜨리는 빗소리외에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 침묵만이 스며 있다. 

촛불을 켜려고 초를 찾는 사이 이내 찾아드는 환한 불빛이 약간은  아쉽게 만든다.

미셸 투르니에의 '짧은 글 긴 침묵'

예전에 한번 그의 '독서노트'를 빌려서 읽은 적이 있는데 아마 대충 읽었었나 보다. 기억나는 게 없다.

얼마전 '외면 일기'를 우연히 잠깐 보았는데 엄마와 아들의 대화에서

각자의 편에서 굳이 속마음과는 다르게 인정하지않으려는 것이 책을 읽고 싶게끔 호기심을 자극했다.

빌리려고 도서관에 갔는데 그 책은 없고 해서 이 책을 빌려왔다.

평생 사제관에서 혼자 살면서 특히 아이들을 좋아한다는 작가.

집, 도시들, 육체, 어린이들, 이미지, 풍경, 책, 죽음 등 다양한 텍스트 들로 엮어져

나에게는 한번으로는 부족하고

여러 번 읽어야 할 책으로 다시 꼼꼼하게 처음부터 읽어야할 책으로 분류해야 될 거 같다.

책을 읽으면서 어떤 부분에서는 정말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로 킥킥거리며 웃을 수 있고

그의 사유가 담긴 내면의 세계를 들여다 본 듯 하다.

 

책 첫장을 펼치면

엉뚱천사.

그는 세상을 돌아다니다가

평범하거나 추하거나 잔혹한 장면들과 마주친다.

그때마다 그 장면을 만들어내는 주역들 중 어느 하나를

날개로 툭 건드린다. 그러면 대뜸 장면은 독창적이고 우아하고 다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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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서

 

어젯밤은 잘 잤다. 나의 불행도 잠이 들었으니까. 아마도 불행은 침대 밑 깔개 위에서

웅크리고 밤을 지낸 것 같다. 나는 그보다 먼저 일어났다. 그래서 잠시 동안 형언할 수 없는

행복을 맛보았다. 나는 세상의 첫 아침을 향하여 눈을 뜬 최초의 인간이었다.

이윽고 나의 불행도 덩달아 잠이 깼다. 그리고 내게 달려들어 간을 꽉 깨물었다. 

 

 

육체

늙는다는 것. 겨울을 위하여 선반에 얹어둔 두 개의 사과.

한 개는 퉁퉁 불어서 썩는다. 다른 한 개는 말라서 쪼그라든다.

가능하다면 단단하고 가벼운 후자의 늙음을 택하라

 

삶은 죽음과 긴밀하게 맺어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정신분석학이

에로스와 타나토스를 두 가지의 정반대되는 충동으로 대립시켜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사랑 때문에 죽는 일은 없다는 듯이 말이다.

그렇다면 트리스탄은? 그리고 로미오는? 그러나 사랑으로 인한 가장 아름다운 죽음은

아마도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와 앙리에트 보젤의 죽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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