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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할 권리 - 김연수

이사벨라아나 2009. 7. 11. 23:12

 

 

얼마전 읽은 책 속에서 소개되어  빌린 책.

사실 2009 이상문학상 수상작가로 그의 '산책하는 이의 다섯가지 즐거움'이라는 단편을 읽었는데

스토리가 꽤 특색있게 다가와

장편소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을 대출했다가

읽지도 못한 채 반납한 기억이 있어 우선순위로 꼽은 책이다.

역시 평범한 여행이야기는 아니다. 

산문집이라고 밝혔듯이 문학에 관한 의미있는 이야기가 많아

사실 약간은 부담스럽기도 했다.

비교적 작은 글씨와, 책장마다 가운데 찍혀있는 노란색 동그라미가 뭘 의미하는 지 모른 채

그의 책 속으로 들어갔다.

 

여행할 권리 = 국경을 넘을 권리?

나는 음융하게 웃었다. 결국 돌아올 테니까. 갈 곳이 없으니까.

우리에겐 국경을 넘어 다른 민족 속으로 들어가, 이윽고 사라지는 유전자가 존재하지 않으니까.

종교의 자유를 찾아 신세계를 향해 떠난 뒤, 거기서 다시 돌아오지 않은 선조들이란 도무지

우리에겐 없으니까, 결국 모두 돌아왔으니까,

 

쿤데라 식으로 말하면, 생은 다른 곳에, '정말' 존재했던 것이다.

 

그 순간부터 아버지의 육체와 내 육체 사이에는 소통이 부재하기 시작했다.

~ 그건 아마도 역사의 우연이 아버지의 삶을 덮치지 않아 그 다른 곳의 리얼리티가 그대로 실현됐다면

나란 존재는 없었을 것이라는 위기감에서 비롯했을 수도 있다.

 

'이것이 바로 나의 삶이다'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왜 글을 쓰느냐면 바로 그 때문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우리의 리얼리티는 이 현실에서 약간 비껴서 있는 셈이다.

 

아스팔트가 깔린 아버지의 고향에서 나는 세상의 모든 국경 너머에 있는 나라, 영영 우리의 것이 될 수 없는

리얼리티를 생각하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술을 마시며 영어로 수다를 떨다보면 어느 순간에 이르러 더이상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고, 아무런 말도 들리지 않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럴 때면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들어 흩뿌려진 구슬처럼 반짝이는 별빛만 바라볼 수밖에 없는데, 그때의 쓸쓸한 기분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멀리 가면  풍경이 달라지지만, 인간들은 다 똑같으니까, 지기 싫어서 악을 쓰다가 실수를 하고,

그 실수를 후회하느라 또 얼마간 시간을 헛되게 보내고, 그러면서 조금씩 배워나가는 게 삶이니까.

인간들이 다 똑같은 한에는 우리도 서로를 이해할 수 있으니까.

 

내가 길가다가 만난 일본인에게 어찌 그런 너스레를 떨 수 있었겠느냐마는 그게 다 외로움 때문이었다.

외로움은 멧돼지처럼 힘이 세다. 꼼짝 못한다.

 

나는 더이상 '노르웨이의 숲'을 읽지 않는다. '데미안'을 읽지 않듯이. 그 소설이 인상적이던 어떤 시기를

지나왔기 때문이다.

 

작가에게도 세계관이 존재하니까 문학작품에는 한 작가가 바라보는 세계의 지평이 고스란히 담긴다.

물론 이 지평에는 인식의 지평도 있고, 현실의 지평도 있는데, 때로는 지리적 지평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진지한 문학이란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낯설게 만들어 자아를 끊임없이 재해석하게 만드는데, 국내용

문학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 자신들이 아는 세계에 맞게 자아를 만들어내면 되는 일이니까,

그러고 나면 경계선 바깥은 모두 타자가 된다.

 

아스트리드가 그 책을 통해 자신이 치유됐다고 말한 의미는  민족적 의미의 피가 아닌 생물학적 의미의

피를 지닌 인간을 발견했다는 뜻이리라. 그녀는 문학이란, 언어를 도구로 정체성을 따져나가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대신에 지역적 문학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즉 피로 연대하는 문학이란 없다는 뜻이었다.

피는 물보다 그다지 진하지 않다.

 

작가는 언제라도 자신을 매혹시킬 세가지 공간을

역, 휴게소, 공항을 들었다.

 

목적을 가지고 떠난 여행에서 자신의 고독을 느끼며 최소한의 자신으로 돌아가

단독자적인 존재로 다른 존재가 된 듯한 착각에 빠지며

또다시 반복적으로 스쳐지나가며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고 한다.

 

질문의 해답을 찾아 떠나는 여행.

그것이 여행할 권리?

애매모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