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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물고기 - 르 끌레지오

이사벨라아나 2009. 7. 25. 22:37

황금물고기 - 르 끌레지오

 

프랑스 작가 르 끌레지오. 2008년 노벨 문학상수상작가다.

 

아프리카 출신의 '밤'이라는 뜻의 소녀 라일라는 어느날  유괴를 당하면서

그녀의 기구한 운명이 시작된다.

자신의 뿌리도 알지 못한 채  살게 되는 라일라.

첫주인인 랄라 아스마가 운명하면서 그녀의 인생 역경이 시작되는데...

마치 길을 잃은 물고기마냥 세상 여기 저기 떠돌다 결국은 자신의 출생지인

아프리카로 돌아 가면서 겪는 거친 풍파와  처절한 밑바닥 생활 속에서 귀마저 멀어버리지만

결코 희망을 잃지 않으면서 살아가는 모습이 그냥 물고기가 아닌 황금물고기가 되어 회귀한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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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서...

매일 밤 나는 너무도 길고 길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기억할 수도 없는 하루, 그 하루 동안 겪은 수많은 일들에 대한

기억에 잠겨 잠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나를 두렵게 하는 것은 고독이었다. 꿈 속에서 나는 때때로 오래 전 유괴당하던 날 일을 다시 겪었다.

나는 온통 새하얀 거리 위로 쏟아져내리던 햇살을 다시 보았고, 검은 새의 끔찍한 울음소리를 다시 들었다.

 

우리는 그곳을 떠나 멀리 갔다. 어디로 가는지도 몰랐으며, 언제 돌아오게 될지도 몰랐다.

우리가 알았던 모든 것이 떠나가고 사라지고 있었으며, 그때 나는 멜라의 저택을 생각하고 있었다

...... 아마도 우리는 바다 저편 어디에선가 죽게 될 것이며, 이곳의 사람들은

아무도 우리에 대해 알 수 없을 것이었다.

 

나는 급류를 거슬러올라가는 물고기처럼, 지금처럼 다른 사람들, 다른 사물들 사이를 누비며 살아가고 싶었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사람들이 끊임없이 나를 그물로 잡으려 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나를 끈끈이에 들러붙게 했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감상과 그들 자신의 약점으로 내게 덫을 놓았다.

 

나는 이중의 삶을 살고 있었다. ~

밤이면 모든 것이 달라졌다. 나는 한 마리의 바퀴벌레가 되었다.

~ 우리만이 아는 길을 통해 지하철 통로 안으로 들어서면 북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 소리에 몸을 떨었다. 그야말로 마술적인 소리였다. 저항할 수 없었다. 나는 그 음악에 이끌려 바다와 사막을 건넜다.

 

그때 나는 세상이란 참으로 좁아서 실만 제대로 끌어당기면 모든 것이 끌려온다는 것, 이를테면 누구든 어떤 일에

관련되면 서로 한 동아리를 이루게 되고, 그들이 다른 사람들을 끌어들이게 되며, 노노와 나같이 그들과 무관한 사람들도

예외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나 나는 놀라지 않았다. 이미 나는 모든 것이 어이없을 정도로 당연한 동시에 더할 나위 없이 부조리하다는

사실을 충분히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다른 이름, 다른 얼굴을 가지고 돌아왔다.

오래 전부터 나는 이 순간을 기다려왔다. 이제 나는 내가 받았던 것을 되돌려줄 것이다. 어쩌면 나는 스스로

깨닫지 못하면서도 언젠가는 이런 순간이 오도록 하기 위해 그 모든 노력을 기울여왔던 것인지도 모른다.

 

드디어 나는 목적지에 이르렀다. 더 멀리로는 갈 수 없었다. 나는 바닷가에, 모래톱이 끝없이 펼쳐져 있는

강변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이곳이다. 이제 나는 확신했다. 하늘의 정점에서 쏟아져내리는 햇살에 세상이 온통 하얗게 보이고, 거리는 텅 비어 있다.

햇살에 눈이 부셔 눈물이 고인다. 뜨거운 바람이 벽을 타고 먼지를 날린다.

 

더이상 멀리 갈 필요가 없다. 이제 나는 마침내 내 여행의 끝에 다다랐음을 안다. 어느 다른 곳이 아니라 바로 이곳이다.

~ 바닷물에 손을 담그면 물살을 거슬러올라가 어느 강의 물을 만지게 되는 것이다. 이곳에서 사막 먼지에 손을

올려놓으며, 나는 내가 태어난 땅을 만진다. 내 어머니의 손을 만진다.

 

떠나기 전에 나는 바닷속의 돌처럼 매끄럽고 단단한 노파의 손을 만졌다. 단 한 번만, 살짝, 잊지 않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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