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먹기 위해서 사는가 아님 살기 위해서 먹는가?
지극히 원초적인 질문이지만
음식은 우리 인생여정에 있어서 지나간 추억과 더불어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 기타 모든 인간 관계에 있어서
소통의 역할을 해주는
삶 그 자체인지도 모르겠다.
누구보다도 파란 만장한 삶을 살아온
작가 황석영의 음식이야기는
굴곡진 우리네 역사와 함께 암울했던 시대상을 반영하고
그의 개인적인 인생사가 녹아있다고 할 수 있다.
어릴 적 가난했던 시절 일본식 집에서의 다꽝 한 줄 들어간
김밥의 추억에서 부터
밀가루로 연명하던 때의 어머니가 특식으로 만들어 주던
장떡에 읽힌 이야기.
북한의 김일성 주석과의 만남에서 먹어 본 언감자국수,
평양방문시의 알려지지 않은 갖가지 찌개에 관한 독특함들.
군대시절 철모에 서리해온 닭을 삶아 먹은 추억.
정치범으로 수감시절 소지와 함께 만들어 먹은 김치부침개.
해남에 정착하면서 세발낙지와 매생이국,
전라도 하면 빼놓을 수 없는 홍어이야기.
전라도 속담에 '만만하기는 홍어 거시기'라고
남에게 무시를 당할 때 항의조로 나오는 말이라고 한다.
망명시절 유럽생활에서의 음식이야기 또한
그의 외롭고도 소소한 삶이 고스란히 묻어있다.
소박하고 지극히 간단한 레시피가 열거 될 때는
이태리의 걸쭉하고 진한 에스프레소 커피만큼이나
낯설면서도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그네'라고 표현되는 그의 여인들과 함께한 추억이 깃든
누룽지나 장아찌들....
사람은 고생하던 시절에 늘 결핍을 느끼며 먹던
음식의 맛을 잊지 못한다고 한다.
특별한 추억이 깃든 사람들과 나눈 음식에 대한 기억들.
그것들은 인생이 끝날 때까지 함께 하리라.
베트남 전후 돌아온 작가는 아무 의욕없는 무기력한 생활로
이어져 스스로 자폐에 빠졌는데
한 잡지에 기고된 누군가의 글, 즉 주소만 알 뿐
아무런 정보가 없는
어떤 대상에게 무작정 자신을 알리는 편지를 쓰는 것으로
시작된 연애를 통해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의욕이 생겨 세상으로 되돌아왔다는 이야기에
오랫동안 눈길이 머물렀다.
몇 번을 읽어도 좋은 책인 거 같다.
* 홍어 거시기에 관한 이야기.(본문에서)
홍어는 암놈과 수놈의 가격차가 많이 나는 데 수놈홍어는 암놈에
비해 헐값이고 쳐주지도 않는다. 실제로 찜해놓은 것을 먹어보면
암놈은 지느러미 부근이나 속뼈가 흐물거리고 오돌오돌 씹히건만
수놈의 것은 뻣뻣하고 딱딱해서 발라내야만 한다. 그리고 살 맛도 부드럽고 쫄깃하지 못하고 어딘가 퍽퍽한 느낌이다.
중략.
어부들이야 그렇지 않겠지만 중간 상인들은 홍어가 들어오면 배를 뒤집어 살피고 나서 수놈 홍어의 '거시기'부터 얼른 떼어낸다.
암놈과 같은 가격을 받아내려는 속셈이다. 그래서 '만만한 게 홍어 거시기'가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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