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특별전 근대를 수놓은 그림 - 과천국립현대미술관

이사벨라아나 2018. 8. 5. 13:03



8월 4일 토요일 오후 4시 넘어

더위를 피해 찾아간 곳 과천국립현대미술관

주변 산으로 둘러싸인 자연환경과 더불어

한국의 성곽과 봉화대의 전통양식이 투영되어있는 건축물이

잘 어우러져 어느 계절에 가든 산책하기에도 좋고

무엇보다 복잡하지 않고 한적해서 느긋하게 머물 수 있는 공간이어서 가끔 가는 곳인데

전시장안은 바깥기온이 너무 더워서인지 생각만큼 시원하지는 않았다.

3층까지 전시를 보고 나오는 곳에 대나무로 만들어진 쉼터가 있었는데

너무 시원해서 그곳에서 오래 앉아있다 왔다.



국립현대미술관 기증작품 특별전으로 2층에는 회화와 사진 전으로

3층에는 근대를 수놓은 그림 展으로

1부 : 근대미술의 발아 (1900 ~1920년대)

외국에서 새로운 미술양식이 도입됨에 따라 변화된 전통 회화 양식의 양상,

사진의 도입과 그 영향 그리고 한국 근대미술 초기의 유화의 전개 양상 등을 살펴볼 수 있다.

2부 : 새로운 표현의 모색(1930 ~ 1940년대)

본격적으로 미술을 공부한 예술가들이 누드, 정물, 풍경 등의 다양한 주제를

인상주의, 야수주의, 표현주의, 추상주의의 여러 표혀법으로 그려 내고자 했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3부 : 의식의 표출(1950 ~ 1960년대)

한국전쟁으로 인해 고난과 좌절을 겪은 예술가들이 전후 나라의 복구에 노력을 기울이면서

전쟁의 상처를 회복하고 희망을 전파하고자 했던 노력을 들여다볼 수 있다.

또한 대한민국 미술전람회를 통해 추구하였던 아카데믹한 사실주의 경향, 추상미술의 전개,

해외로 나간 예술가들의 활동 양상 등 작가들의 의식이 표출되는 다양한

모습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변월룡 <진달래> 1954


육명심 <예술가의 초상시리즈 - 박경리>


강홍구 <사람의 집 - 프로세믹스 부산/안창17>


고희동 <화조도> 1927


고희동 <자화상> 1918


나혜석 <무희(캉캉)> 1940


구본웅 <꽃> 1930


오지호 <풍경> 1927


호지호 <처의 상> 1936


김주경 <사양> 1927


주경 <파란> 1923


주경은 한국 최초의 추상화가이자 근대미술의 개척자로 일컬어진다.

그의 초기 추상 작품들은 당시 국내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보기 드문 매우 실험적이고 독특한 것이었다.

<파란>은 색, 선, 면과 같은 기학학적 요소만을 배열하여 구성한 추상회화이다.

그는 사업을 하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일찍이 외국의 미술 잡지를 접하면서 외국에서 유행하던 미술 경향을

접할 수 있었으며, 이 작품은 속도감을 강조하기 위해 연속적인 움직임을 포착하려는 미래주의

회화의 영향을 받았다.


서동진 <팔레트 속의 자화상> 1930년대


구본웅 <여인> 1930년대


서울에서 태어난 구본웅은 1920년대 초반 이종우에게 유화를 배웠고 김복진에게 조각을 배웠다.

구본웅은 1930년대의 한국 표현주의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이다. <여인>은 전통적인 회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누드를 소재로 한 작품으로 한국 근대기의 누드화 중에서도

강렬한 표현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머리 위로 손을 올리고 가슴을 한껏 드러낸 자세는

매우 과감하며, 대담하고 자유분방한 붓질은 검은색, 빨간색, 녹색, 흰색을 주조로 하여 강한 인상을 준다.

 


이인성 <계산동 성당> 1930년대


이인성은 서동진이 경영하던 대구미술사에서 수채화를 배웠고, 1931년부터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연속 6회 특선을

수상했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 <계산동 성당>은 한국의 나지막한 기와지붕 너머로 십자가가 솟아 있는 대구의

계산동 성당을 그린 작품이다. 서양식 건축물과 한국의 전통 가옥이 공존하는 이 작품에는

당시 새롭게 근대를 체험했던 화가의 시선이 담겨있다.

또한 화가의 눈에 보이는 인상을 따라 표현된 다채로운 색상은 인상주의적 경향을 보여준다.


서동진 <뒷골목> 1932


서동진은 일본 유학 후 고향인 대구에서 대구미술사를 설립하여 서양화 기법과 재료를 보급하고

후배들을 지도하는 등 대구 미술의 발전에 힘썼다. 그의 몇 점 안 되는 유화 작품 중 하나인

<팔레트 속의 자화상>은 자신이 사용하던 팔레트 덮개 안쪽에 자화상을 그린 작품이다.

작가의 재치가 돋보이는 이 작품은 화가의 중요한 도구에 자화상을 그림으로써

서양화가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강조하고 있다.


진환 <시(翅)>1941


진환은 일본 유학 시기에 이중섭, 이쾌대 등과 함께 서양화가 단체인 조선신미술가협회를 조직하여 활동했다.

이들은 친일 성향의 단체들을 외면하고, 순수미술, 민족적인 화풍의 미술을 지향했다.

'날개','날개를펴다'라는 의미의 <시>는 새가 날아가는 듯한 속도감을 전해 주며 '날개'라는

본질적 의미를 추상적으로 담고 있다. 이 작품은 10여 년간의 일본 생활 후 귀국하여 활발하게

활동을 펼쳐 나가려는 작가의 희망을 담은 것으로 추정된다.


김기창 <모임> 1943


이종무 <자화상> 1958


고희동에게 사사한 이종무는 동경 가와바타미술학교와 동방미술학원에서 수학했다. 아카데믹한 경향을 띠는

<자화상>은 팔레트와 붓을 들고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는 모습을 그린 작가의 자화상이다.

화면 오른쪽에 그려 넣은 원탁과 그 위에 놓인 과일, 국화꽃 병이 왼쪽에 서 있는 작가와 구도상 균형을 이룬다.

탁자 뒤편에 조그마한 소년이 호기심과 흥미가 가득한 표정으로 그림을 바라보고 있는데,

이 소년을 통해 작가의 내면세계를 표현하고 있는 듯하다.


변월룡 <1953년 9월 판문점 휴전회담장> 1954


변월룡은 연해주에서 태어난 고려인으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예술 학교를 졸업했다.

그는 1953년 7월부터 소련문화성이 그를 북한에 파견하면서 약 1년동안 평양미술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였다.

1953년에 열린 휴전 회담장을 그린 <1953년 9월 판문점 휴전회담장>은 회담장 풍경의 쓸쓸함을 전해 준다.

판문점 내부와 창문 너머로 보이는 밝은 색감은 역설적이게도 역사의 비극을 더욱 두드러지게 한다.


이중섭 <애들과 물고기와 게> 1950년대


유영국 <산(흙)> 1959


<산(흙)>은 유영국이 평생을 일관되게 그려 온 '산'이라는 주제를 다룬 초기작이다.

이 작품은 구체적 이미지의 재현이 사라지고 대상의 본질에 접근하는 단순성이 잘 드러난 작품이다.

화면은 추상 충동에 의해 짙은 청색과 밝은 황색 등 다채로운 색채, 거친 필치, 두터운 질감으로 화면을

이루고 있다. 그는 하늘에서 내려다본 듯한 독특한 시점에서 자연의 모습을 기하학적으로 재구성하였다.

순수한 색채와 강렬한 빛의 현상으로 추상화된 자연이 화폭에 담겨 있다.


김환기 <산월> 1960


김환기는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이다. 1930년대 동경에서 유학하면서 입체주의, 기하 추상 등 여러

전위적인 경향을 실험하였고, 광복 이후 1947년에 신사실파를 조직하였다.

민속적 기물과 자연 풍경을 단순하게 도식화하는

그의 작품 세계는 1956~1959년 파리에 머물면서 더욱 심화되었다.

파리에서 귀국하여 그린 <산월>은

산을 암시하는 검은 선들이 겹쳐있고, 푸른색의 둥근 달이 배치되어 자연의 형테를

간결하게 표현하면서도 추상적인 표현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김환기 <새벽 #3> 1964~1965


장욱진 <물고기> 1959


장욱진 <마을> 1956


작게 그린 세계가 더욱 진실하다고 여긴 장욱진은 화폭에 나무, 집, 새, 아이 등 일상적인 소개를 그렸다.

그가 피난지 부산에서 고향으로 돌아와 제작한 <마을>은 나무, 집, 사람 등이 단순화된 형태로 배치되어 있다.

원시적이고 평면적인 표현 방식때문에 어린아이으 그림 같은 소박한 느낌이 든다.

이러한 장욱진의 독특한 표현 방식은 아동미술에 대한 관심이 대두되던 유럽의 20세기 초 상황들, 1911년부터

1914년까지 뮌헨에서 활동했던 청기사파와 이 그룹의 일원이었던 파울클레와 연관지을 수 있다.


박수근 <노상> 1962


박수근은 서민들의 일상적인 모습을 그렸는데 그중에서도 절구질, 빨래를 하거나 함지를 머리에 이고 시장에 나가는

여인들의 모습과 시장, 길 위의 풍경을 즐겨 그렸다. 그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

관심을 기울였기에 얼굴의 표정이나 세부 묘사 없이 거의 뒷모습을 대부분 그렸다.

<노상> 또한 두 사람이 서로 건너편에 마주앉아 길 위에 좌판을 벌려 놓은 모습이 담겨 있다.

 

박수근 <정물화> 연도마상


김흥수 <누드> 연도미상


이세득 <허> 1965


박서보 <원형질 No. 64-1> 1964


김창열 <제사> 1965


이응노 <구성> 1962


<구성>은 이응노가 1960년대 초반부터 본격적인 추상화 작업을 시도하였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그림은 구체적인 형상이 드러나 있지는 않지만 여러 층의 이미지를 분석하면 인물을 단순화하여 표현하였거나

문자를 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응노는 1960년대 작업에서 엥포르멜의 영향을 받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캔버스에 종이로 작업하고 먹과 종이의 상호 반응의 효과를 통해 동양 문화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고 있다.


천경자 <청춘의 문> 1968


천경자는 전통적인 채색화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주제와 기법을 추구했던 한국화의 현대적 변화의

파격을 잘 보여주는 작가이다. 화면 속의 등장인물은 신비로운 여인의 상징으로서 오랫동안 인기를

끌었던 영화배우 그레타 가르보이다.

주인공은 신비스러운 표정과 가냘픈 손짓으로 인해 더욱더 몽환적으로 보인다.

전체적인 색조는 보라색인데 이러한 색상 역시 신비로우면서 현실을 초월한 세계를 보여주는 듯하다.


박노수 <휴식> 1956


박래현 <노점> 1956


김종영 <작품> 1965


김종영은 생활과 예술 속에서 기교와 가식을 멀리하면서 완벽함을 추구하였는데 이러한 특징은

작품 속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조각 작품을 제작하는 데 있어 가장 기본적인 조형 요소를 중요하게 생각하였고

이를 유기적 생명체의 단순한 형태로 나타내고자 하였다. 그의 작품들은 대부분 크기가 크지 않은 것들이

많은데, 이는 작품 제작 과정에서 자신의 힘으로만 작업할 수 있도록 크기와 무게를 한정하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