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알베르토 자코메티 展

이사벨라아나 2018. 2. 16. 15:00



알베르토 자코메티 展

예술의 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2018년 2월 15일 목요일



구정 연휴 첫날 보게 된 전시

1901년생인 스위스 출신의 조각가이자 화가, 철학가, 사상가인  알베르토 자코메티

프랑스에서는 고흐전 이상으로 인기가 많다고 하는데

지난 번 영국 테이트 명작전 - 누드 전시에서 그의 작품 '걸어가는 여인'청동상을 본 기억이 있다.

조각에 위대한 혁명을 일으킨 현대 조각 작품 중 제일 비싼 사람으로 유명한데

스위스 화폐에 그의 얼굴과 작품 '걸어가는 사람'이 새겨져 있을 정도로

위인의 평가를 받는 사람이라고 한다.

전시실에 들어서니 앙리 가르띠에 브레송이 찍은 사진이 눈에 띄었는데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속을 외투를 덮어쓰고 주머니에 한손을 넣고 걷는 그의 모습이

더할 나위없이 쓸쓸하고 고독해 보였다.



 가족사진과 함께 첫번째 방은 자코메티의 유년기 작품이 걸려 있었다.

9살때 드로잉을 시작했고 14살때 조각을 시작했다고 하는데

이는 후기 인상파풍의 그림을 그렸던 스위스 국민화가로 유명했던

아버지의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가족관계는 화가인 아버지 지오반니 자코메티와

어머니 아네타 자코메티, 첫째 알베르토 자코메티,

공예 예술가로 성공한 동생 디에코 자코메티

누나인 오필리아 자코메티,

스위스 유명 건축가인 막내 브루노 자코메티로 예술가 집안이었다.


유일한 혈육인 누나의 아이 실비오의 작은 조각상과

알베르토가 14살~19살 때 그린 그림으로 전시되었는데

초기 작품들은 대체로 밝고 화사한 톤으로

터치나 색감은 이미 대가로 어릴 때부터 천재 취급을 받았다고 한다.



자코메티는 이후 화가와 조각사이에서 조각을 선택했다고 한다.

전시는 모델 위주로 나뉘어 소개가 되었는데

예술가의 뮤즈로 4명이 등장한다.

20살때 처음 만났던 플로라가 첫번째 여인이었고

두번째 뮤즈가 예술가들의 전문 모델이었던 이사벨이었다.

자코메티가 담고 싶은 것은 외모가 아니라 그녀가 갖고 있는 독특하고 깊은 시선과 아우라 자체를

포착하고 싶었는데 이때 추상에서 초상으로 돌아오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실존하는 시각 경험을 연구하다 보니 조각이 작아지고 깊어지는 고뇌의 시기로 빠져드는데

이사벨 조각은 이시기의 상징성으로 중요한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한다.

또한 자코메티는 고등학교때 기차여행을 같이한 낯선 사람의 죽음을 목격하면서

강박증이 생기는데 어둠을 극도로 싫어해 밤에 불을 켜놓고 생활하는 하는 예민함을 보이는데

 1살 터울의 동생 디에고가 그의 조수 역할을 맡으면서 그의 평생 예술적 지지자가 된다.

사무엘 바케트의 인간존재의 부조리성을 보여주는 연극'고도를 기다리며' 무대 장치를 세우기도 했다.



자코메티가 추구하는 조각은

인간의 눈으로 관찰하는 세상을 미술이론이 아닌 철학적으로 발전하면서 실존이라는 것과

맞닿게 되는데 다비드의 아름다운 근육이나 로댕의 역동성이 아니었고

말년기 작품에 담아내고 싶었던 것은 상처받은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눈앞에 있는 모델이 가지고

있는 영혼, 생명 자체, 고독, 고뇌, 슬픔, 행복 등을  담고 싶었기 때문에

그 시대의 인간상을 포착해 내서 담아냈다는 위대한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동생 디에고는 조수이자 모델로 모든 시기의 조각작품으로 다 존재한다.

자코메티는 젊었을때 이미 성공했고 말년에는 더 크게 성공했지만

본인은 예술가로써 물질은 독이다 라는 생각으로 돈을 물건처럼

쌓아 놓고 평생 7평의 작업실에서 예술만 했다고 한다.



세번째 뮤즈는 2차 대전때 스위스로 피난가서 만난 여인 아네트이다.

22살의 나이차로 위대한 예술가임을 알아보는 안목을 가진 여인으로

절대적 뮤즈로 존재하고 싶어했는데 좁은 작업실에서 평생 견디고

자리를 지켜 냈다. 아네트의 40대 흉상 조각상이 3개 전시되어 있다.

네번째 뮤즈는 사창가출신인 여인 캐롤린이다.

자코메티가 건강이 악화되고 움직이기도 힘들었던 매너리즘에 빠질 위기에

처해 있을 때 만난 여인으로 새로운 영감을 얻어 남아있던 열정까지 불태웠던 또 한번의 조각사에

발전을 이루도록 도화선이 되어 줬던 여인이었기때문에 미술사의 시점에서

이 여인의 등장은 너무나 중요한 사건이자 상징성을 갖는다고 한다.



자코메티 조각이 위대한 이유는 독보적인 자기 고유의 스타일을 구축헸다는 것이다.

당대 예술가들이 아름다운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표면적인 자체에 집중했거나 상처받은

전쟁시대를 표현한다고 무의식, 꿈, 추상표현 등을 연구하고 있었을 때

자코메티는 상처받은 시대의 인간상 자체를 외면하지 않고 응시하고자 도전했다

당시로서는 반대의 과정이었던 큰 덩어리를 끊임없이 긁어내고 걷어내는 과정 속에서

표면에 미적표현이 아닌 그 안에 담겨있었던 내면의 본질 그 영혼이라는 생명 자체를

포착하고자 도전했기 때문에 사르트르는 이 사람을 특정 미술사조가 아니라

그 시대 실존주의 철학을 대표하는 조각가다 라고 평가했는데

현대에 와서는 예술성, 시대성, 스타일 모든 것이 완벽해

작품이 하나 경매에 나오면 천억원, 이천억원 이렇게

팔려버리는 기현상까지 만들어 내고 있다고 한다.

이번 전시에 소개된120여점의 작품을 합친 가격이 2조 천억원이라고 한다.



살아있을때  개인전을 하면 늘 어젯밤까지 혹은 오늘 아침까지 만들던

작품을 최고의 역작이라며 다시 소개한 사람이다.

어떻게 하면 좀더 깊은 생명을 시선속에 포착할 수 있을까?

죽을 때까지도 모델을 찾아다니고 연구하고 도전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자코메티의 마스터 피스는 당연히 유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인 모델 야나이야라와의 만남과 샤르트르와의 친분 또한

그가 얼마나 철학적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피카소와의 인연도 말년에 가치관의 차이로 절교하게 되었는데

피카소는 예술가인줄 알았는데 그냥 천재였고

자코메티는 천재였던 예술가로 소개되었다고 한다.

어둠도 있고 강박도 있고 인간적 부족함도 꽤나 많았지만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예술만을 위해 고뇌하고 도전해 나가던 인간 예술가의

예술만을 위해 살았던 자코메티였다.

.




마지막 모델은 로타르로 사진작가였지만 부랑자에 가까웠던 사람으로

젊을때부터 친해서 돈을 빌리려 왔다가 그의 시선속에 빠져들어

 참 슬프지만 생동감 넘치는 집념있는 시선으로 상처받은

20세기를 살아가는 대표적인 인간의 생명으로 느껴졌기 때문에 모델을 의뢰했다고 한다.


로타르는 사진작가여서 모든 작업 과정을 사진으로 남겼다.

마지막 영혼이 담긴 유작으로 남은 로타르 시리즈 작품

원본석고가 아시아 최초로 전시되었는데

마지막이란 상징때문에 이 작품의 시선을 들여다보면

어느순간 시간을 초월해 상처받았던 그 시대의 인간의 영혼 그

생명 자체를 마주하게 된다.

그는 늘 실패라고 얘기했지만 결국 조각 속에 생명을 포착하는데

도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진품이 갖는 아우라와 디에고가 살린 마지막 작품이라는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마지막 어둠의 암실에 놓여있는 작품은 스위스 화폐뒤에 새겨진 작품으로

걸어가면서 작아지는 시각 잔상을 연구하면서 조각을 작게 만든 시기 스타일의 일부로

평가액이 3800억원이라고 한다.

미국에서 의뢰 받은 작품 '걷고 있는 사람' 은 특정 누군가를 표현해낸 것이 아니라

상처받은 이 시대를 겪어내고 그럼에도 일어나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인류이자 우리이자 나 자신을 마주할 작품으로 완성된 것이라고 한다.

방탄유리나 가드 없이 다이렉트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전시장 내부는 촬영이 금지인데 오로지 이 작품만 사진 촬영이 허락되었다.


"조각은 '사람'을 담고 사람은 '영혼'을 담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