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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 나스메 소세키

이사벨라아나 2011. 3. 24. 21:04

 

 

나스메 소세키는 제목을 평범하게 붙이기로 유명한 작가인데 '그 후' 라는 제목 또한 특별한 의미없이

단지 자신의 소설 '산시로' 이후에 씌여진 소설이기도 하고

또 주인공이 그 소설 다음 단계의 인물이어서 붙였다는 지극히 단순한 이유가 있다.

이 책은 그의 소설 '마음'과 주인공의 내면심리 묘사와 특별한 직업없이 무위도식하는 면에 있어서 아주 많이 비슷한 부분이 있다.

다소 지루할 법도 한 스토리가 작가 특유의 날카롭고 감각적이고 세밀한 감정표현으로 아주 잔잔하면서도 선명하게 다가온다.

주인공 다이스케는 그저 본가에서 보내주는 생활비로 가정부를 두고 자신의 고급한 취미인 독서로 시간을 보내고 때로는 한가로이 산책을 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남자답지 않게 화분을 가꾸고 꽃을 사 집안에 장식할 줄 아는 자연적인 본성을 느끼고 색채와 향기를 음미할 줄 하는

독특한 취향도 가지고 있는 상당한 인텔리 실업자다. 

아주 감상적인 면도 없지 않은 고학력 지식인의 유목생활을 유유히 즐기면서 스스로는 '결코 빈둥거리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자신은 직업에 의해 더럽혀지지 않은 충실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고귀한 부류의 인간이라고 생각하며' 지극히 단조로운 삶을 살아간다. 

그와 함께 사는 하인이나 다름없는 서생또한 다이스케의 이미지와 많이 비슷하다.

소설에서는 무위도식하는 주인공 다이스케와 그의 친구 히라오카 그리고 히라오카의 아내 미치요와의 묘연한 관계가 주요 스토리인데

대학생활때 알게된 친구 스가누마의 여동생 미치요를 다이스케와 또다른 친구 히라오카 둘이 동시에 좋아했지만

정작 스가누마가 장티푸스로 죽자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를  히라오카에게 양보하며 두사람의 결혼을 주선한다.

하지만 정작 미치오와 하라오카의 평탄하지 않은 결혼생활을 보면서 그냥 방관하지만

다시 그의 도움을 찾는 친구를 만나면서

태어난 아이의 죽음과 히라오카의 방탕한 생활에서 오는 쪼들리는 빚으로 인해 3년여의 결혼생활의 어려움을 겪게 되고

남편에게조차 관심대상에서 멀어진 듯 미치요의 불행한 모습을 보면서 그녀에 대한 동정과 연민이 새삼스럽게 연정으로 다시 일어

그녀에게 자신의 여자가 되어줄 것을 고백하면서 그녀의 동의를 얻어내지만 미혼남과 이미 유부녀인 두사람의 관계는 그리 쉽지가 않다.

아버지의 주선으로 인한 혼사를 거절하고 친구의 부인과의 관계가 알려 지면서  본가와도 의절을 당하고 친구 히라오카에게도 절교를 당한다.

그런 후 미치요의 병마소식에 다이스케는 안절부절 못하다가

결국은 정신없이 일자리를 찾아 나서면서 소설은 끝이 나는데

결말이 다소 허무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주인공의 내면에 들어가 있는 기분이었다.

시대와는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는 다이스케.

소설 속에는 유독 비오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표지의 그림과 무관하지 않게 비오는 골목을 이리저리 누비면서 현실의 세계로 어쩔 수 없이 걸어가야 하는

 쓸쓸한 남자의 뒷모습의 잔영이 오래 남아 있다. 

 


 

책 속에서

 

단눈치오는 일상생활에서의 두 가지 정취는 바로 그 두 색깔에서 발현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따라서 무엇이든 흥분을 필요로 하는 방, 즉 음악실이랄지 서재 같은 곳은 가능한 한 빨갛게 칠하고, 한편 침실이나 휴게실과 같이 정신의 안정을 필요로 하는 곳은 모두 푸른색 계통으로 칠했다. 이와 같이 심리학자의 학설을 응용함으로써 시인은 호기심을 만족시켰던 듯하다. -70

 

그날 밤은 곧 비가 쏟아질 것처럼 하늘이 땅과 비슷한 색깔을 하고 있었다. 정류장의 빨간 기둥 옆에 홀로 서서 전차를 기다리고 있자, 저 멀리에서 작은 불덩어리가 나타나더니 어둠 속에서 상하로 흔들리면서 다이스케가 있는 쪽으로 일직선으로 다가오는 모습이 무척 외롭게 느껴졌다. - 126

 

이따금 그러하듯이 지금 그의 기분은 전체적으로 어두운 빛을 띠고 있었다. 그래서 너무 밝은 것을 접하면 그 모순을 견디기가 어려웠다. 개옥잠화의 잎도 오랫동안 응시하고 있으면 곧 싫증이 날 정도였다. - 158

 

다이스케는 백합을 바라보면서 방을 가득 채운 강한 향기 속에 스스로를 송두리째 내맡겼다. 그는 그런 후각적인 자극 속에서 지난날의 미치요의 모습을 분명히 떠올릴 수가 있었다. 그 과거 속에는 떨쳐버릴 수 없는 자신의 옛 그림자가 연기처럼 휘감기고 있었다. 그는 한참 후에,

'오늘 비로소 자연의 옛 시절로 돌아가는구나.' 라고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렇게 말할 수 있었을 때, 그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안위(安慰)를 온몸에 느꼈다. 왜 좀 더 일찍 돌아갈 수 없었던 것일까 하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왜 자연에 저향을 했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는 비 속에서, 백합 속에서, 그리고 재현된 과거 속에서 순수하고 완벽하게 평화로운 생명을 발견했다. 그 생명은 어디에도 욕망이 없고 이해관계를 따지려들지도 않았으며 자기를 압박하는 도덕도 없었다. 구름과 같은 자유와 물과 같은 자연이 있었다. 그리고 모든 것이 행복했다. 따라서 모든 것이 아름다웠다. - 2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