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권에 이어진 2권 내용 또한 처음에는 다르지 않았다. 중간중간에 비극으로 끝날 것 같은 암시를 주는 대목이 있어
결말을 어렴풋이 예측할 수 있었는데 자신을 떠난 여인 퓌순에 대한 사랑의 집착으로
케말은 그녀의 집에 팔년이란 세월동안 일주일에 서너번씩 방문하며 그녀를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행복을 느끼고
기다리다 보면 자신과 다시 결혼 할 수 있을거라는 확신에 찬 희망을 갖고 오로지 인내로 견딘다.
그녀의 흔적이 묻어있는 작은 물건들을 수집하면서 그녀가 피웠던 꽁초의 모양에서
그녀의 감정을 읽어낼 정도로 모든 것을
올인하는 그에게서 자신의 사랑의 증거물을 통해서 그들의 사랑이 영원할 것이라고 믿는다.
결국에는 그의 바람대로 푸쉰은 사랑없이 결혼한 남편 케이둔과 이혼하고 케말과 결혼하기로 하고 같이 유럽여행을 떠나지만
배우가 되지 못한 것을 괴로워 하면서 운전을 하다가 교통사고로 죽고 만다.
이 세상에서는 그녀와 함께 행복을 누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그녀의 죽음 후 자신의 가졌던 그동안의 생각과 기억들, 상실의 고통과 그것에 대한 의미를 간직하고자
박물관을 세울 것을 계획한다.
자신의 여인이 떠난 그 후의 삶을 행복한 경험들과 함께
여러나라의 개인 박물관들을 방문하여 거기서 보고 느끼것을 토대로 푸쉰이 살았던 집에 그대로 박물관으로 꾸민다.
주인공 케말은 작가 오르한 파묵에게 자신의 사랑이야기를 소설로 써줄 것을 의뢰하고 작가는
본인이 1인칭 주인공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쓰고 중간중간 독자를 위한 설명이 그래서 들어있었나 보다
그것이 박물관의 도록으로
케말이라는 한 남자가 한여자와의 사랑의 추억으로 평생 보낸 삶을 관람하기를 기대하면서 미래에 방문할 관람객들에게
안내자료가 되게끔 부탁하는 이야기가 끝에 나온다.
끝내는 이루어지지만 같이 할 수 없는 비극적인 추억이 되어버린 사랑을 나누었던 시간들이
박물관이라는 공간속에 새로이 탄생되면서 영원히 자신만의 것으로 간직할 수 있는 과거속의 추억의 존재로 머무르게 하면서
항상 자신의 여인을 생각하는 그가 참으로 불쌍해 보였는데
한편으로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을 감내하면서 사랑을 찾으려는 그의 노력이 가슴아프게 느껴졌다.
한 남자의 30년동안의 처참하고 가슴아픈 사랑이야기가 오르한 파묵이란 작가에 의해
새로운 한권의 소설로 창작되어 실제의 순수박물관과 더불어 작품으로 영원히 남는 다는 것이
의미있어 보였다.
언젠가 터키를 여행할 기회가 생기면
이 책을 읽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순순박물관에 방문해서 그들이 남기고간 사랑의 흔적을 둘러보고
케말이 가졌던 그 물건들에 대한 하나하나의 느낌을 직접 확인해 보고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
책 속에서
대부분의 인간에게 삶은 진심을 다해 살아가야 하는 행복한 것이 아니라, 압력과 처벌 그리고 믿을 수밖에 없는 거짓들로 이루어진
좁은 공간에서 연기를 계속해 가는 것임을, 이즈음 처음으로 느끼기 시작한 것 같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학]에서 '지금'이라는 하나하나의 순간들과 '시간'을 구분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분자처럼, 이 하나하나의 순간은 나뉠 수 없고 쪼개질 수 없다. 시간은 이런 나뉠 수 없는 순간들을 합친 선이다.
시간은, 즉 지금을 결합시킨 선은, 타륵 씨가 아무리 '잊어라'라고 해도, 아무리 애를 써도, 바보나 기억이 없는 사람들 말고는
아무도 완전히 잊을 수 없다. 우리 모두 그저 행복하기 위해 시간을 잊으려고 애를 써 볼 뿐이다.
여러가지 불운과 싸우면서 지낸 불행한 시절을 이제는 달콤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흔히들 말하는 대로 세월이 지나면 나쁜 기억조차
좋게 떠오르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살았던 나쁜 시절(나쁜 선, 시간) 중에서 좋은 순간들(지금은 점들)만을 기억하고 이야기하기 때문이었다.
그곳에서 퓌순과 나누었던 행복한 시간을 떠올렸고, 갈수록 늘어 가는 '나의 수집품'을 경탄하며 바라보았다. 끝없이 쌓여 가는
물건들은 내 사랑의 밀도를 보여 주는 표시가 되었다. 가끔은 퓌순과 나누었던 행복한 시간을 떠올리게 하는 위안물이 아니라,
내 영혼에 불고 있는 폭풍인 듯 그것들을 바라볼 때도 있었다.
우리는 퓌순이 새를 그릴 때 배경이 되어 준 도시를 내다보았다.
내 마음에는 기쁨이 아니라 슬픔이 일었다. 우리는 이 세계를 아주 좋아했고 이 세계에 속해 있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 자신이 이 그림의 순수 속에 있는 것 같았다.
이제 이 물건들은 내가 살았던 순간의 표시, 그 아름다운 순간을 연상시키는 물건을 넘어, 그 순간의 일부가 되었다.
그녀를 향한 나의 사랑은, 나의 집착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다른 누군가와 자유롭게 이 세상을 공유하는 길로
나를 이끌지 못했다. 이것이 지금 설명하는 세계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내 영혼의 깊은 곳에서 처음부터 알았기
때문에 나의 내면을 향했으며, 퓌순을 내 안에서 찾는 길로 이끌었던 것이다.
내 삶의 형태가 얼마나 이상한지 처음 깨달은 것처럼, 나는 놀라면서도 한편으로는 평온하게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탐 - 김경집 (0) | 2010.08.31 |
---|---|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 신경숙 (0) | 2010.08.28 |
남도 섬길 여행 - 유혜준 (0) | 2010.08.14 |
순수 박물관 1 - 오르한 파묵 (0) | 2010.08.02 |
일요일의 마음 - 이남호 (0) | 2010.07.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