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인기있는 책 중의 한권인 이 책은 도서관에서 대출받기가 쉽지 않아 언젠가는 읽어야지 하면서
포기했던 책이었는데 책을 좋아하는 어느 모임의 한 분이 가져온 한아름의 책보따리에서
다른 사람들은 다 읽었는지 선택받지 못해 남아있는 책을 어쩔 수 없이(?) 빌려왔다.
사실, 나는 타인에게 책을 잘 빌리지 않는 편이다. 왜냐면 읽는동안 책이 더럽혀질까봐 신경이 쓰여서
가급적 도서관을 이용하는 편인데 이 책을 읽고서야 그 분에게 빌릴 수 있었음에 고마움을 느낀다.
모리스 라벨의 음악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의 제목을 그대로 따온 책.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있는 마르가르타 공주 옆의 못생긴 시녀의 얼굴이 선명한 책의 표지에서
못생긴 여자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 보았다.
과연 못생긴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의 심리는 무엇일까?
잘난 인물하나로 삼류배우였다가 어느덧 인기를 얻어 별로 이쁘거나 잘나지도 않은 어머니를 과감하게 버린 아버지에 대한
아련한 기억이 있기 때문에 그저 못생겼다는 이유하나로 동정의 마음으로 그녀에게서
어머니의 아픔이 느껴져서 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런 경험이 없다면 그 남자가 과연
그녀에게 사랑이라는(그게 맞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감정을 가질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스무살 시절 그녀와의 데이트장소였던 카페 <산토리니>의 벽에 걸려 있는 사진속의 스위스의 융프라우를 보면서
언젠가 가자고 했는데(물론 가난해서 그곳에 갈 확률이 별로 없다고 생각했지만)
먼 훗날 꿈같은 해후를 한 후에 다시 가게 되었을 때의 황홀했던 순간들.
물론 소설이지만 작가가 내뱉는 대화체의 독백 속에서 인간이 가지는 본모습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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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서
모든 사랑은 오해다. 그를 사랑한다는 오해, 그는 이렇게 다르다는 오해, 그녀는 이런 여자란 오해,
그에겐 내가 전부란 오해, 그의 모든 걸 이해한다는 오해, 그녀가 더없이 아름답다는 오해,
그는 결코 변하지 않을 거란 오해, 그에게 내가 필요할 거란 오해, 그가 지금 외로울 거란 오해, 그런 그녀를 영원히 사랑할 거라는 오해....
그런 사실을 모른 채
어쩌면 그, 한 폭의 그림을 간직한 채 나는 시간과.... 어둠과... 죽음의 골짜기를 지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좀
더 많은 표현을 알았더라면...모든 순간의 의미와, 다가올 일들을 내가 미리 알았더라면...
나의 이십대는 전혀 다른 음들을 쏟아내며 또 다른 인생의 테이블을 돌고 돌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앞날을 알 수 없는 인간의 순간과... 그런, 운명의 마디 수를 다 채운
나는 시디를 고르기 시작한다.
굳이 커버를 확인하지 않아도, 시디의 위치와 손끝의 질감만으로 나는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정확히 꺼내 든다.
시디를 정리해 두거나 그런 성격은 아니지마는, 모리스 라벨의 이 앨범만큼은 언제나 정확히...가장 닳고 닳은 상태의 케이스로 그 자리에 꽂혀있다.
오랜 세월이 흘렀다 해도
아무리 정확한 현실의 문이 있다 해도, 지나버린 시간은 도저히 그 문을 빠져나갈 수 없는 비현실적인 부피의 바위와도 같은 것이었다.
생각했던 삶이 아니라 해도... 결국 이것도 다른 누구의 삶이 아닌 나 자신의 삶이란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은 결국 주어진 삶을 살 수밖에 없고, 또 그런 이유로 서로에게 죄책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이제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된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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