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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어도 11월에는 - 한스 에리히 노삭

이사벨라아나 2010. 3. 14. 10:31

언젠가 함정임의 '춘하추동'이라는 책에서 보고 최근에 또 원재훈의 '오늘만은'에서 언급되어 몇 번 빌렸지만 읽지 못했던 이 책을 드디어 읽었다.

'우리는 잘못하고 있는 거예요'라고 시작되는 소설의 첫문장이 암시하듯

비교적 성공한 사업가 막스의 아내로 아무 부족함 없이 살지만 사랑없는 결혼생활에 지독한 외로움을 느끼던 차

조촐한 다과모임에서 처음 만난  작가 베르돌트 뮌켄의 ' 당신과 함께라면 이대로 죽을 수도 있겠습니다'라는 말 한마디에

그와 함께 집으로 와서 여행가방을 챙긴 후 남편과 시아버지에게  당당하게 집을 나가겠다며 통보하며

떠나는 마리안네.

하지만 그와의 두달동안의 동거생활은 그리 순탄하지 못하다.

그러던 중 시아버지의 방문과 설득으로  시아버지를 따라 집으로 돌아가지만

베르톨트의 약속을 잊지 않는다. 늦어도 11월에는....그의 작품이 끝나 그녀를 주인공으로 하는 무대를 올릴 것이라고.

결국은 그녀를 데리러 온 베르톨트를 따라 다시 집을 나서지만 그들의 자동차 사고로 최후를 맞는 약간은 어이없이 끝난다. 

사랑은 죽음과 동질일까? 아무 조건없이 따라 나서는 마리안네가 이해가 가질 않았다.

바람을 핀 아내에 대한 한없는 관대함을 보여주는 남편과 시아버지의 태도 또한 가정을 지키려는 의지와 타인의 이목에 더욱 신경쓰며

아내와 며느리를 지키려는 눈물겨운 고통이 절절히 다가왔다.

결혼한 남자나 여자 가끔은 일탈을 꿈꾸지만 다소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많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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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서

하지만 우리는 행복했다. 그 역시 행복했다. 나는 알 수 있었다. 그 행복이 비록 오랫동안 계속될 수 없음을,

그것이 예전부터 생각해오던 것과 같지 않음을 알고 있었지만 어쨌든 우리는 행복했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행복은 오직 현재일 뿐이다. 거기엔 과거도 미래도 없다.

그때 우린 참다운 행복을 알았고, 그래서 그후 우린 불행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아무것도 몰랐을 것이다.

 

모두들 우리가 행복한 줄로 알고 있었다.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 한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물러설 수도 없었다. 우리는 모든 것들의 외부에 있었다. 밖에서 우리는 무언가의 주위를 맴돌고 잇었다.

손을 뻗어 붙잡으려 해보지만 그럴수록 우리는 점점 밖으로 밀려날 뿐이었다. 마치 부드러운 바람에 날려가듯이......

아주 부드럽고 가벼운 바람이지만, 대항할 수는 없다.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아무 희망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끝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 역시 모든 것이 무의미한 것처럼 생각될 때가 있지. 내 나이에도 말이다. 부끄러운 일이지.

사람들은 흔히들 말하지. 그래도 인생은 계속된다고...... 누구도 깊게 생각해보려 하지 않아. 그냥 대충으로 넘기려는 거지.

하지만 어쨌든 틀린 말은 아니야. 운수가 사나울 땐 흔히들 소리치지.

이따위 인생이 다 뭐야! 정말 지긋지긋해! 하지만 어쨌든 인생은, 삶은 그렇게 계속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