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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처럼 - 신영복

이사벨라아나 2009. 8. 3. 21:13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빌리려고 도서관에 갔는데 마감시간에 쫓겨

정작 그 책은 찾지 못하고 이 책을 빌려왔다.

서화에세이 답게 그림과 글이 참으로 아름답다.

 

 처음처럼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는 새싹처럼

우리는 하루가 저무는 겨울 저녁에도

마치 아침처럼, 새봅처럼, 처음처럼

언제나 새날을 시작하고 있다."

산다는 것은 수많은 처음을 만들어가는 끊임없는 시작입니다.

 

함께 맞는 비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입니다.

함께 비를 맞지 않는 위로는

따뜻하지 않습니다.

위로는 위로를 받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위로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경작

 

사랑이란 삶을 통하여

서서히 경작되는 농작물입니다.

부모 형제를 선택하여 출생하는 사람이 없듯이

사랑도 그것을 선택할 수는 없습니다.

사랑은 사전에는 존재하지 않으며

사후에 경작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말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사랑이 경작되기 이전이라면 그것은 사실이 아니며

그 이후라면 새삼스레 말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가장 위대한 능력은

불모의 땅에서도 사랑을 경작한다는 사실입니다.

 

 

  콜럼부스의 달걀은 발상전환의 전형적 일화입니다.

  발상의 전환 없이는 결코 경쟁에 이길 수 없다는 신자유주의의 메시지로

  오늘날도 변함없이 예찬되고 있습니다.

  아무도 달걀을 세우지 못했지만 콜럼부스는 달걀의 모서리를 깨트림으로써 쉽게 세웠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발상전환의 창조성이라고 하기보다는

  생명 그 자체를 서슴지 않고 깨트릴 수 있는 비정한 폭력성이라 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감히 달걀을 깨트릴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은 그것이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달걀이 둥근 모양인 것은 그 속의 생명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모지지 않고 둥글어야 어미가 가슴에 품고 굴리면서 골고루 체온을 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타원형의 모양으로 만들어 멀리 굴러가지 않도록 하거나,

  혹시 멀리 굴러가더라도 다시 돌아오게 한 것 모두 생명을 지키기 위한 고뇌의 산물입니다.

  그러한 달걀을 차마 깨트리려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사람과

  그것을 서슴없이 깨트려 세울 수 있는 사람의 차이는 단지 발상의 차이가 아닙니다.

  인간성의 차이라고 해야 합니다.

  이것은 콜럼부스 개인의 이야기가 아님은 물론입니다.

  그것을 천재적인 발상전환이라고 예찬하고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임은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콜럼부스가 도착한 이후, 대륙에는 과연 무수한 생명이 깨트려지는 소리로 가득 찼습니다.

  생명이 무참하게 파괴되는 소리는 콜럼부스의 달걀에서부터 오늘날의 이라크에 이르기까지

  세계의 곳곳에서 끊임없이 이어져 오고 있음이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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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함께 하는 사색속에서

쓰여진 글이라

짧은 글이지만 마음에 많이 와닿았다.

특히 그림과 함께 어우러진 서체가 너무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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