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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 - 밀란 쿤데라

이사벨라아나 2009. 1. 17. 16:51

나름대로 많은 공감을 갖게 해 준 책이다.
처음에는 현실과 꿈, 그리고 몽상과 환상이 교차되어
약간은 난해한 표현들에서 갈피를 잡지 못했다.
죽음에 대해서, 우정에 대해서,
그리고 사랑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는 책.

평범한 주부로 살아가던 주인공 샹탈은
다섯 살난 아들의 느닷없는 죽음을 계기로
남편이나 주변인들이 그녀가 우울에 빠지지 않도록
다시 아이를 낳을 것을 종용하자 자신의 정체성을 느끼며
그 삶에서 빠져나오기로 결심한다.
독립을 위해서는 돈과  남자가 필요했기에
교사월급보다 3배나 많은 카피라이터로 취직한 후
자신만의 아파트를 얻고
장마르크라는 남자를 만난 후  바로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한 후
과거의 생으로부터 과감하게 벗어난다.

샹탈은 간간히 아이의 무덤을 찾으면서 아들의 죽음과 더불어
비윤리적인 행복감을 동반한 자신의 삶을 인정하면서도
자신보다 4년이나 어린 사랑하는 남자 장 마르크에게
노쇠한 자신의 육체로 인해 지극히 우울한 목소리로
‘남자들이 더 이상 나를 돌아보지 않아요’ 하며
자신에 대한 존재의 불안을 드러낸다.
장마르크는 그 말에 심한 질투심을 느낀다.
자신의 사랑에 대한 그녀의 무관심에 심한 모욕감을 느끼지만
그녀를 위해 시라노가 되어 익명의 편지를 쓴다.

내면에서는 장 마르크 또한
그녀를 사랑하기 시작하면서 샹탈의 죽음을 생각하며
어느날  불현듯 샹탈이 떠날 것이라는 생각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며 그러면서 자신은
철저히 불안정하고 일시적으로 편안함에 안주하여
사는 주변인이라는 것을 생각한다.

사람은 누구나 야누스의 얼굴을 갖고 있지 않을까?
표면적인 삶과 비밀스럽고 내면적인 이단의 삶.

하지만 비밀편지의 주인공이 다름아닌 장마르크란 사실을 알고
그를 배신한 오래된 그의 친구 F를 밀어낸 것처럼
그녀 또한 그보다 연상이어서 그녀를 떠날 구실을 찾고 있다고
믿고 오해를 한 채 런던으로 떠난다.

장마르크는 그녀가 편지를 쓴 사람이 그라는 것에  적대적인것에,
왜 속임수의 진짜 의미를 짐작하지 못하는지 안타까워하며
그녀를 떠나지만 다시
샹탈이 정말 자신을 배신할 수 있을 지에 대한 질문을 해보며
견딜수없고 고통스러운 질투심으로 참을 수 없어
그녀의 아파트를 찾아 문고리를 연다.


끝에서 작가는 그들의 대화를 이렇게 쓴다.
그녀는 ‘나는 더 이상 당신으로부터 눈길을 떼지 않을 거예요,
쉴 새 없이 당신을 바라 보겠어요’ ‘
'밤새도록 스탠드를 켜 놓을 거예요. 매일 밤마다.’

결국은 
모든 것을 견디게 하는 힘은
바로 '사랑'이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책 속에서
‘우정이란 기억력의 원활한 작용을 위해
인간에게 필요 불가결한 것이야.
과거를 기억하고 그것을 항상 가지고 다니는 것은
아마도 흔히 말하듯 자아의 총체성을 보존하기 위한 필요조건일 거야.
자아가 위축되지 않고 그 부피를 간직하기 위해서는 화분에 물을 주듯 추억에도 물을 주어야만 하며 이 물주기가 과거의 증인, 말하자면 친구들과 규칙적인 접촉을 요구하는 거야. 그들은 우리의 거울이야. 우리의 기억인 셈이지. 우리가 그들에게 요구하는 것이란 우리가 자아를 비춰볼 수 있도록 그들이 이따금 거울의 윤을 내주는 것일 뿐이야'(p.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