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으로 알고 있는 이성복님의 사진 에세이에 끌려 빌려왔는데 책 속의 사진이 흑백이고 너무 작은게 아쉬웠다.
정말 작은 사진한장 한장들을 자세히 보기 위해 촛점을 맞추고 묘사한 곳을 찾아내기 위해 뚫릴 듯이 봐야만 했다.
한라산 오름을 오르면서 시인은 오름에 대한 단상이랄까
각양 각색의 오름으로 비슷하면서도 다른 모습을 언어라는 수단으로 자신만의 표현으로 담아 놓은 책.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듯이 선과 면으로 이루어진 실제의 오름을 참으로 다양한 은유로 세세하게 펼쳐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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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서
이처럼 현재의 죽임과 과거의 살림을 좌우하는 은유를 가능케 하는 동력은 감각들의 '닮음', 특히 소리의 닮음과 모습의 닮음에 있으며,
그러한 한 모든 은유는 비-진실이며 어리석음에 불과하다
('닮았다'는 말은 본래 같지 않음을 전제로 이를테면 우리가 사四라는 숫자를 기피하는 것은
그 소리가 죽을 사死 자와 닮아 있기 때문이며, 호두를 많이 먹으면 머리가 좋아진다는 속설 또한
두개골 속의 뇌가 굴곡이 많은 호두의 속과 닮아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소리와 모습은 상호 전염적이며 상호 동화적이다.
가령 '잿빛'이라는 빛깔을 볼 수 없으며, 있는 그대로의 '봉분'이라는 소리는 '봉분'의 모습을 지니게 된다.
우리는 결코 있는 그대로의 '잿빛'이라는 빛깔을 볼 수 없으며, 있는 그대로의 '봉분'이라는 소리를 듣지도 못한다.
요컨대 우리는 은유의 잿빛 봉분 속에서 한 발자국도 걸어날올 수 없는 것이다. (P.36)
그 느린 곡선속에 숨어 있던 직선은 푹 삶긴 순대처럼 녹아 허물어지고,
그 때문에 곡선은 폴대가 쓰러진 텐트처럼 맨바닥에 달라붙기나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무기력한 곡선은 꼿꼿한 직선들의 기둥으로 떠받쳐진 원주의 긴장을 가지지 못한다.(p.54)
본래 기이하고 섬뜩한 것들이 우리에게 행사하는 불편한 힘은 그것들을 밀어내려는 우리 자신의 본능적 충동에서 나온 것이며,
그것은 마주 오는 차들의 불빛으로 빛나는 도로 표지판과 같은 원리라 하겠다.
손톱으로 스텐 대야를 긁을 때 나는 소리가 그토록 소름 끼치게 들리는 것은 그 소리가,
혹은 적어도 그 소리를 닮은 소리가 이미 우리 안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p.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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