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성당 - 레이먼드 카버
레이먼드 카버
문학동네 출판
김연수 옮김
레이먼드 카버의 세번째 단편집으로 그의 소설집 중에서 최고로 평가받는다고 한다.
제목이 '대성당'이라고 해서 카톨릭과 연관되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사실 종교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책 속의 12편의 단편들 중 작가 자신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과 '대성당'
이 두편만이라도 살아남는다면 정말 행복할 거라고 했는데
그 두편이 대체로 긍정적으로 끝나기 때문이라고 한다.
글 속에 흔히 등장하는 부부는 대체로 대화나 소통이 단절된 관계로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적인 삶의 한가운데 일어날 수 있는 소소한 이야기들이
아주 건조하게 흐르기도 하고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전개되기도 하면서 무거운 결말로 남을 때
그야말로 별 거 아닌 이야기일 수도 있는 것을 작가의 빛을 발하는 글쓰기로
전혀 다른 감정으로 다가와 가슴 한 켠에 쿵 하고 내려 앉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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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서
그리고 얼마 뒤,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변해버렸다. 결국 그건 아이가 생겼다는 점인데,
프렌은 그 변화의 시초로 버드의 집에서 보낸 그날 밤의 일들을 떠올리곤 했다.
하지만 그녀는 틀렸다. 변화는 나중에 찾아왔다.
그리고 변화가 찾아왔을 때, 그건 다른 사람들에게나 일어날 법한 변화였지,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 45 깃털들
비록 지금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하지만 그는 이제 모든게 끝났다는 걸 이해했고 그녀를 보낼 수 있다고 느꼈다.
그는 자신들이 함께한 인생이 자신이 말한 그대로 이뤄졌다는 것을 확신했다.
하지만 그 인생은 이제 지나가고 있었다. 그 지나침은 - 비록 그게 불가능하게 보였고 그가 맞서 싸우기까지 했지만 -
이제 그의 일부가 됐다. 그가 거쳐온 지난 인생의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 287 열
"굴레"라고 나는 말해본다. 나는 그걸 창 쪽으로 들고 가 밝은 빛에 비춰본다.
멋질 수가 없는, 낡은 검은 가죽의 말굴레일 뿐이다. 내가 아는 바는 그다지 많지 않다.
~
재갈은 무겁고 차갑다. 이빨로 이런 걸 물어야만 한다면 금방 많은 것을 알게 됐으리라.
뭔가 당겨진다면 그건 떠날 시간이 됐다는 뜻이라고.
어딘가로 가고 있다는 뜻이라고. - 322 굴레
그는 입 밖으로 연기를 내뿜었다. "수백 명의 일꾼들이 오십 년이나 백 년 동안 일해야 대성당 하나를 짓는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지."
그가 말했다. "물론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는 걸 들은 거야. 한 집안이 대대로 대성당을 짓는 일을 했다는 것도 알고 있어. 텔레비전에서도
그렇게 말하고 있고, 평생 대성당을 짓고도 결국 그 완성을 보지 못한 채 죽는다더군. 이보게, 그런 식이라면 우리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게 아니겠는가?"
그는 소리 내어 웃었다. - 346 대성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