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와 책 - 정혜윤
부제가 지상에서 가장 관능적인 독서기 이다.
가끔 듣는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의 피디여서 관심이 있었는데
그녀의 방대한 책읽기에 관한 책.
과연 어마어마한 양의 책을 읽는 독서가 인가 보다.
그녀는 한권을 지긋이 읽지 않고 여러 권을 동시에 읽는 스타일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자신의 침대는 물론 주변에 늘 흐트러져 있는 책에 둘러싸인 듯한 느낌이 든다.
방콕행 비행기안 리조트 광고지 속에서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호텔방'이 떠올랐다는..
여행가방이 놓여있고 붉은 속옷을 입은 여인이 침대에 걸터앉아 책을 읽고 있는 그림에서
자신의 방 침대 주위의 책들이 생각 나서 제목이 '침대와 책' 이라고 했는지...
자신의 생활과 읽은 책을 연관해서 에세이 쓰듯 자연스럽게 엮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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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서
우울에 대해서 지금까지 내가 확실히 아는 것은 두 가지뿐이다. 첫번째는 다른 사람이 소유하고 있는 것을 내가
소유하지 못해서 금세 외로워진 결과로서의 감정은 우울이라는 것. 두번째는 인간이 아니라 사물이 나의 기대를
저버릴 때의 감정도 우울이라는 것. 그러니 우울은 차마 다른 인간에게 화낼 일이 못 되는 감정인 것 같다.(P.22)
내게는 수많은 나쁜 일과 몇 개의 좋은 일이 일어날 것임을 예감했습니다. 하지만 항상 그런 모든 것, 특히
나쁜 일이 장기적으로 글로 변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행복은 다른 것으로 변환된 필요가 없으니까요.
행복은 그 자체가 목적이니까요. (P162 보르헤스 '칼잡이들의 이야기' 에서)
여행자였을 때 마음에 들지 않는 도시를 만나면 재빨리 스쳐 간다(차라투스트라가 그랬듯이)는 것을
일상에도 적용해야 한다. 모든 감정에 다 힘을 뺄 수는 없다. 보낼 풍경은 보내야 한다.(p.210)
이러한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 오로지 그에게만 열렬히 빠져 있을 때는 거의 모든
책 속에서 그의 초상을 발견하게 되는 경험을. 그렇다. 그는 주연인 동시에 악역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온갖 이야기속에서 장단편 관계없이 다양한 소설 속에서. 이러한 사실로부터 우리의 상상력은 무한히
작은 것 속에서 해답을 구할 수 있는 능력, 즉 내적으로 집중되어 있는 모든 것 속에서 새로운, 압축된
충만함을 담을 수 있는 어떤 외연적인 것을 찾아내는 재능이란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펼쳐졌을 때야 비로소 숨을 쉬고 새로 넓은 공간을 확보하면서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 모습을 안쪽에서
활짝 펼쳐 보이는 부채의 그림처럼 받아들이는 재능이라고 말이다.(p.212 발터 벤야민의 '일방통행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