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만 보는 바보 - 이덕무와 그의 벗들 이야기 (안소영)
김연수의 '청춘의 문장들'을 읽다가 그의 책속에서 이덕무가 쓴 글이 나와 읽다가 말고
이 책을 집어들었다.
이덕무의 간서치전.
스스로를 책만 읽는 바보라 칭하면서
방안에 들어오는 햇살을 따라 벽에 금을 긋고 상을 옮기면서 어두운 그림자가 질때까지
온 우주를 담고 있는 신비한 책의 세계에 흠뻑 빠진 그의 어린날의 추억들과
서자로 태어난 설움과 더불어 지극히 가난했던 삶에
책을 팔아 양식을 구한 일에서부터 굶주림으로 배를 곯으며 소리내어 책을 읽으면서 애써 그것을 잊으려고 했던 순간들.
그리고 책과 더불어 사귄 나이차이를 떠난 친구들과 스승과 함께 한 이야기가 온기있게 다가왔다.
시와 문장에 능한 이덕무.
백탑을 중심으로 지척에 사는 마음맞는 벗들과 함께 있는 순간들이야 말로 인생에 있어서 가장 빛나는 시간이었노라고
말할 수 있었기에 그의 인생은 아름답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예에 뜻을 두고 있던 처남이자 벗인 백동수.
솔직해서 거침이 없어 사람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했던 박제가.
열세살 아래인 서자가 아닌 당당한 양반의 자제인 이서구.
일곱살 아래이면서도 늘 환한 웃음을 띠며 목소리 좋은 유득공.
그리고 그의 스승인 연암 박지원과 담헌 홍대용 선생.
그들과 평생 함께하면서 규장각 검시관으로 궁궐에 들어가 책에 관한 일을 하면서
정조의 총애를 받고
중국으로 가는 사신의 수행원으로 가면서 넓은 요동땅을 밟으며 그들이 느꼈던 세로운 세계에 대한 이야기.
중국에서 보고 듣고 느꼈던 것을 바탕으로 실사구시를 주장하는 실학파로
가난한 조선을 개혁하려고 한 그들의 노력을 엿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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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서
오래된 책들에 스며 있는 은은한 묵향은 내 마음을 편안하게 어루만져 주고, 보풀이 인 낡은 책장들은 내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아니, 스스로 나에게 다가오기도 한다. 울적한 내 마음을 옛사람들의 노래로 위로해 주기도 하고,
낯선 섬나라의 파도 소리로 마음을 들뜨게 하기도 한다.
나는 책 속에서 소리를 듣는다.
머나먼 북쪽 변방의 매서운 겨울바람 소리, 먼 옛날 가을 귀뚜라미 소리가 책에서 들린다.
시인 두보는 귀뚜라미 소리를 이렇게 표현하였다.
서글픈 거문고와 거세게 떨리는 피리 소리
그 곡조도 따르지 못하는 이 천진함!
책 속에는 또 사람의 목소리가 있다.
세상살이와 사람살이에 대한 깨우침을 주는 나지막한 목소리가 있고,
그늘진 신세를 한탄하는 울적한 목소리도 있다.
나는 또한 그림을 보듯 책을 본다.
아무도 가 보지 않은 울창한 숲을, 책은 나에게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