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 아고타 크리스토프
도서관에서 빌려온 두권의 책 '어제'와 '황금물고기' 중
두께가 굉장히 얇은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어제'를 짧은 시간에 읽었다.
헝가리 출신으로 스위스로 망명하여 프랑스어로 글을 쓴다는 다소 특이한 작가.
소설의 주인공 또한 남자일 뿐 시계공장을 다니며 틈틈이 글을 쓰는 것이 그녀의 이력과 비슷하다.
사생아로 태어나 자신의 아버지를 칼로 찌르고 도망친 후 국경을 넘어
전쟁을 틈타 전쟁고아로 망명하여 전혀 타인이 되어 단순 반복적인 메마르고 가혹한 공장노동자의 삶을 산다.
어릴 적 여자친구이자 이복남매인 '린'이라는 여자를 기다리며
정작 '린'이 나타났을 때 그녀가 이미 결혼한 사실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구애하지만 그녀로 부터
거절을 당하고 다시 현실의 연인이 욜란드와 결혼을 한다.
누구도 죽이지 못하는 자신의 유약함을 인정하면서
상처입은 새처럼 모든 것을 떠나보내며 더이상 글을 쓰지 않으며
자신의 꿈을 과감하게 버리고 지극히 평범한 삶인 현실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책 속에서....
어제는 내내 무척 아름다웠다.
숲속의 음악,
내 머리칼 사이와
너의 내민 두 손 속의 바람,
그리고 태양이 있었기 때문에.
'이제 나에게는 희망이라곤 거의 없다. 전에는 그것을 찾아서 끊임없이 이동했다. 나는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엇을?
나도 몰랐다. 그러나 인생은 있는 그대로의 것, 어쩌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인생은 무언가 의미 있는 것이어야 했고 나는 그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찾아다녔다.
나는 이제 기다릴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방안에서 의자에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바깥세상에는 그럴듯한 어떤 인생이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내 인생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다.
다른 사람들의 인생에서는 무언가 별볼일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이제 나는 그런 일에 관심 없다. - 나는 생각한다 中 -
비가 온다. 가늘고 찬 빗줄기가 지붕 위로, 나무 위로, 무덤 위로 떨어진다.
그들이 나를 보러 왔을 때, 슬픔으로 일그러지고 복잡한 표정을 한 그들의 얼굴에선 빗줄기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들은 나를 바라보았고 추위는 더 심해졌다. 나의 하얀 벽들은 더이상 나를 보호해주지 않았다.
그것들은 결코 나를 보호해줄 수 없었다.
그것들의 견고함은 환상일 뿐이고, 흰색은 더럽혀져 있었다.
어제, 나는 뜻밖에도 행복한 순간을 경험했는데,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것은 비와 안개를 뚫고 내게로 왔다.
그것은 미소 띤 얼굴로 나무들 위로 떠다니다가 춤추듯 내 앞으로 다가와서 나를 감쌌다.
피곤하다. 어제 저녁에도 맥주를 마시면서 글을 썼다. 문장들이 머릿속에서 맴돈다.
글쓰기가 파괴하는 것 같다. - 그들 中 -
시간이 갈라진다. 유년의 빈 공백은 어디서 다시 찾을 것인가? 어두운 공간에 갇힌 일그러진 태양은?
허공에서 전복된 길은 어디서 되찾을 것인가? 계절들은 의미를 잃었다. 내일, 어제, 그런 단어들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현재가 있을 뿐, 어떤 때는 눈이 온다. 또다른 때는 비가 온다. 그리고 나서 해가 나고, 바람이 분다. 이 모든 것은 현재이다.
그것은 과거가 아니었고, 미래가 아닐 것이다. 지금 일어나고 있다. 항상. 모든 것이 동시에.
왜냐하면 사물들은 내 안에서 살고 있지 시간 속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안에서는, 모든 것이 현재다.
- 그래, 나도 알아. 나는 한 도시에서 아주 오랜 세월을 보냈어. 나는 그곳 사람들을 하나도 알지 못해.
그러니까 내가 어디에 있는냐는 중요하지 않아.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자유롭고 행복할 수 있었을 거아.
- 비 中 -
"그러니까, 산으로 가. 그리고 나를 죽게 내버려둬. 나는 네 슬픔을 더는 참을 수가 없어.
잿빛 폭포의 슬픔, 진창길을 따라 걸어가는 새벽의 슬픔."
- 항해자 들 中 -